어떤 소극장 /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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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5회 작성일 22-03-07 04:11본문
어떤 소극장 / 함기석
극장 안은 어두웠다
계단을 따라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나는
뒤에서 두 번째 줄 끝에 앉았다
무대엔 백발의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휠체어 앞에는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투명 유리 찻잔에서 김이 올라왔다
테이블 맞은 편엔 절망에 빠진 한 남자가 보였고
백지에 어두운 유서를 쓰고 있었다
흐린 핀 조명 아래서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진흙과 유리의 날들을 이야기하며
절망에 빠진 남자를 위로했다
너무 걱정 말게 자넨 오늘 밤 죽지 않을 거네!
벽 너머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 왔고
조명이 밝아지면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여든 살의 나였다
남자는 마흔일곱 살의 나였고 무대 왼쪽에서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무대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금방 알아챘다
그 아이는 열한 살의 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걸어 나깠다
내가 등장하자 절망에 빠진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구겨진 유서를 손에 움켜쥔 채 내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무슨 일을 하시오?
시를 쓰는 서른 살 청년입니다
목숨을 걸 작정입니다 확신에 찬 내 대답에
남자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벽 너머 수평선만 바라보았고
극장은 둥둥 떠가는거대한 눈동자 였다
무대 오른쪽에서 자전거 탄 아이 둘이 나오더니
깔깔깔 떠들며 무대 왼쪽으로 사라졌다
* 함기석 :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작가세계> 등단,
시집 <오랜지 기하학> 등 다수
#,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 되어 납짝하게 데칼코마니 된
4차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 시를 쓰는 청년입니다 목숨을 걸 작정입니다
- 미래의 내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 백발의 나는 말 없이 벽 너머 수평선만 바라보았고........
詩란,
평생을 걸고 써야 할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라 하네
더듬 더듬 더듬어서 견딘 세월 벅찬 결기는
하얀 나비 등에 천년 남을 墨畵 한 폭 그려 넣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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