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거린 이유 / 손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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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24회 작성일 22-04-08 09:28본문
(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 김포신문 2022.04.08.)
시큰거린 이유 / 손석호
콧등에 기댄 안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릴 때, 문득
내 풍경이 누군가에게 등을 기대고 있는 것 같아
살며시 눈이 감겼다
언젠가부터 앙상한 풍경 속에
당신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억지로 기억해 낸 체취에 기대어 잠들곤 했는데
빗소리에 놀라 눈뜨면
체취는 항상 말끔하게 씻겨져 있었다
장마의 밤이었다
체취가 젖지 않게 마음속에 코를 닮은 오두막을 짓고
창을 활짝 열어 놓았다
며칠을 기다려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아
창밖으로 목을 빼내 킁킁거렸다
콧등으로 빗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시 감상)
어느 날 불쑥, 생각나는 사람이나 생각나는 일이나,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그 반대편에 내가 있다. 사람이나 일이나 풍경이나 모두 나를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힘든 일이다. 마치 답 없는 발신 문자처럼. 그래도 정답은 맘껏 그리워하는 것이다. 코가 시큰거리는 것은 나만 그리워하면 되니까. 적어도 상대는 아프지 않으니까.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놓아두는 것이 답이다. 봄이다. 시큰거릴 일이 더 많으면 좋겠다.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프로필)
경북 영주, 공단문학상, 주변인과 문학 등단, 볼륨 동인, 시집(나는 불타고 있다)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고나pl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감상하였읍니다
언제나 좋은 시, 씹으면 씹을 수록 입안 가득 스며드는
늘 고맙게 먹고 있읍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