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모서리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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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6회 작성일 22-04-11 06:45본문
순간의 모서리 / 이혜미
입 안에서 별들이 자라나는 저녁에는
자주 피를 흘렸다
짤린 자리마다 고여드는
낮은 언덕들
흘린다는 말은 다정했기에
사람의 귀퉁이는 조금씩 슬픈 기척을 가졌지
팔꿈치를 부딪히면 차가운 빛으로 가득해지던 손바닥
감싸 쥔 자리가 얼룩으로 깜박이면
불가능에 대해 생각해
모름의 온도와
진눈깨비의 각도에 대해
내리던 비가 얼어
몸을 걸어 잠글 때
창문은 무슨 꿈을 꾸나
흐르던 비가 멈칫 굳어갈 때
몸은
달아나는 방향들이 있어
겨울의 창틀은 더욱 분명해지고
버려진 경계들이 무성해졌다
눈사람처럼 모서리를 버려가며
잠들고 싶었지
드물다는 말은 점차 희미해져서
깨어진 잔에 입술을 대고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 이혜미 : 1987년 경기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일보> 침몰하는 저녁으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등
#,
모서리는 극과 극이 부딪히는 변곡점으로 분노, 울분, 저주
등 갈등이 함의된 이미지인데,
화자의 모서리는 구체적이고 선명하지도 않은 변곡점으로
실체는 없고 연기만 나는 소리는 있으나 진원지가 없는
비오는날 담 넘어가는 뱀처럼 모호성에 초점을 두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미로를 헤쳐가 듯 잠재된 지향점을 더듬어 찾아야
하는 묘미가 있다
화자의 등단작 <침몰하는 저녁>을 처음 읽고 마음 속 깊이
복받치는 한줄기 빛 같은 환희를 주체하지 못하고 온 몸으
로만 끙끙 앓던 그 때가 문득 생각나는 암울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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