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금토일/정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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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9회 작성일 22-04-14 21:02본문
월화수목금토일
정다연
잘 지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지내 답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름기 묻은 손으로 세제를 씻으며
물기를 닦던 사소한 습관과 벨을 누르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당신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음성에 대해
-
잘 지내고 있어?
벽장에 비치는 것이라곤 그림자 하나뿐인데
문득 묻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비를 모으고 모으다 못 견디고 무너지는 댐처럼
폭설에 쓰러지는 나무처럼
어떻게 지내
묻고 싶은 순간이
-
오늘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앞에 두고
왜 싫어했을까? 이렇게 먹기 좋은 것을
웃으면서
월화수목금토일
당신을 잊다가
- 시집 <서로에게 기대어 끝까지>에서, 2021 -
- 오늘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이 시집을 읽다가 문득,
이 시가 댐 같은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나는 이런 생활시가 좋다.
복잡한 머리를 이고 수많은 고민과 수많은 다툼과
또 그 속을 알 길 없는 상대의 심연을 마주하다 지친 우리가,
기대고 싶은,
허기진 저녁을 살짝이나마 채우고 싶은,
그런 시.
문득,
나는 문득이란 단어를 사랑한다.
문득 드는 마음과 문득 깨닫게 된 사랑이 우릴 여기까지 이끌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깐 오늘 문득,
이 시를 읽다가
폭설에 쓰러지는 나무처럼
잘 먹고 잘 생활하니?
묻고 싶은 모든 이름들에게 이 시를 날려 보내고 싶다.
월화수목금토일,
까마득히 시를 잊고 지내다가,
정말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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