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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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22-05-01 07:09본문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
창비2009 강성은[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감상평 : 감성이라고 할까 이성이라고 할까 감수성이라고 할까
모두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에 지성까지 겸비한다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겠는가
위의 작품은 약간의 감수성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얘기드릴 수 있겠다
비틀어쓰기, 낯설게하기, 기시감없애기 등을 감수성의 기본이라고 얘기들 한다
요즘은 흔해빠진 기법이라서 차라리 [모르게하기]가 탁월한 감수성이라고 얘기드린다
위의 시는 겨울 같은 과거를 녹이려 하는 현재가 암울하게 반영된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겠지만 상처는 흉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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