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가장자리를 /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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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5회 작성일 22-05-01 07:11본문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끓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천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법륜처럼 굴려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길들어지지 않은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워한다네
한 십만년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
창비2012 백무산[그 모든 가장자리]
감상평 :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을 위해 외곽으로 발길이 간다는 시인
지구는 별이라는 생각 속에 어떤 위기의식이 담겼는가 살펴보았다
<벌거벗은 인간이구나>라는 담담한 감탄사로 결론을 지어볼 수 있겠다
가장자리가 그리워지는 한 십만년이나 소급해서 살고 싶다는 시인
그는 인간이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신으로 나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일까
인류가 신인류가 되고 자본주의가 신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일자리가 없어지는 이 때
백무산시인은 인간에 내장된 DNA를 법륜처럼 굴리면서 인생사를 논하고 싶었나 보다
DNA라고 부르지 않고 디스크 메모리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인공지능시대를 가늠해 본다
잘 읽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가장자리>를 꼭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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