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 장석남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22-05-02 04:57본문
밤길 / 장석남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 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그러하다가
새벽달이 뜨면 올올이
풀리는 빛에 걸음을 걸려라
걸려 넘어져라
넘어져 무릎에 철철 피가 넘치는
핏빛에 파란 별들과 여러날 시각을 달리해서 뜨던 날
샛방과 가난한 식탁,
옹색한 여관 잠과 마주치는 눈길들의
망초꽃 같은 세미나
꼬부라져 사라졌던 또 다른 길들 피어날 것이다
환하고 축축하게 웃으면서 이곳이군
내가 닿은 곳은 이곳이군
조금은 쓰라리겠지
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그것이 다 우리들의 연애였으니
* 장석남 :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젖은 눈물> 등 다수
#,
화자는 밤길을 간다
그러나 걸어서는 갈 수 없고 훨 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곳은 유실수 풋열매 떨어지는 소리 풀 풀 들리는 이승인 것이다
화자는 죽었으며 죽어, 저승에서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옛 시절을
되밟으면서 이승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오는 길 구비마다 절절하다
네러티브의 서사는 평범하나 시인이 발휘하는 이미지 구상력은
심오하다 흐름이 뒤바뀐 발상에서 오는 생경함, 독자의 감성을
현혹시키는 어휘 선택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독자도 한 번쯤 경험
하고 싶은 서정이다
*
서산 너머서 어렴 풋 들리는 소리는
배꽃 지는 소리
풋감 익는 소리
달빛 흐르는 소리 어울려
죽은 내 어미 친정집 담 넘어오는 소리
- 먼 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