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스터 /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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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회 작성일 22-05-06 22:50본문
내 놓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는 척하면서 얼굴을 벗고
벽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 앞에 하나의 벽이 놓인다
멀리서 새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이내 그 새는 벽에 부딪칠 것입니다
쿵
보았습니까
방금 전까지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가고 이었습니다만,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다시 새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라고 말하는 순간
새의 날갯짓은 나타납니다
새는 모든 사물의 심장 속
물 항아리 같은 침묵에 담겨 있지요
장미가 불이 되고
어항이 물 없이 흘러넘치고
어둠속에서 저절로 팽이가 돌아가는 것은 모두
새의 소관
나는 불가능을 말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새를 호명했습니다만,
액자를 든 사람들이 가까이 몰려들었다
몇몇은 원하는 이야기를 골라 담아 자리를 떴다
우리는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불붙은 손으로
어둠속에서 한 사람이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음악에 휩싸인
길들이 두갈래 세갈래 갈라지고
불현듯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쿵
눈을 뜨면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서 존재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결국은 이 모든 게 믿음의 문제이겠습니다만,
도착을 모르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꼈다
모두들 다른 새로움을 찾아 떠나갔다
우리를 가로막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음계를 통해서
나는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성대 잘린 개들을 위한 발성법
빛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공터에 앉아 혼잣말을 하던 그는
남몰래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모자를 불태우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보았다고 믿는다
벽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비2015 안희연[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감상평 : 안희연의 시는 모험과 죽음이 숨겨져 있다
그녀의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었다
그녀는 1986연도 생인 것을 가만해 너무 심오한 철학을 논하듯
모험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새와 물고기 그리고 호수와 동굴 또는 돌과 불의 신비로움 등
다 읽고 느낀 점은 완독했다는 안도감과 어리다는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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