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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겨울숲은 저 홀로 정정하다 / 고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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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6회 작성일 22-05-11 00:28

본문

쑥대밭 된 희망을 끌고 뒷산에 오르는데

눈발 한점 없이 쟁명한 소한

바람 하나는 온통 쟁쟁한 울음이도다


텅 빈 들길을 지나 이윽고 들어선 산 초입엔

성성하던 백발 죄다 뜯기고 긴 꽃대궁과 잎새만

바싹 벼린 바람의 날에 씻기고 있는 억새밭

그곳에서 장끼와 까투리 앓는 소리를 듣는다

그 사랑자리가 꼭 살 베이는 억새밭이어야 했는지

다만 메마른 것은 늘 메마른 바람을 부른다


좀더 올라 떼찔레며 칡덤불 얼크러진

그곳에 우수수 쏟아진 붉은머리오목눈이떼

그들이 콕콕 찍는 빨간 열매는

그 무리에 비하면 양이 너무 적겠다

새들에게도 겨울양식은 늘 부족할 것이다


새야 새야 그러나 저 빽빽한 잡목숲에

아직 손가락만한 크기의 어린 떨기나무들은

발가벗은 어린아이와도 같이

회초리도 휙휙 후리며 겨울을 잘 나고 있다


도리깨를 만들던 간부태나무, 열매기름을 짜서

석유 대신 쓰던 산초나무, 잎을 찧어 냇물에 풀어

그 독으로 고기를 잡던 때죽나무, 김치에 넣어

향을 내던 잰피나무, 싸리비 매던 싸릿대,

열매의 빨간 빛이 너무 좋던 마가목과

참빗살나무, 깨금나무, 정금나무, 갈매나무랑

이름이 반짝이던 나무들도 그 이름까지

다 벗어버린 정갈함으로 바람에 씻기고 있다


그때 마침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소리 들려 고개 번쩍 드니 아아 거기

오동나무를 온통 구멍내고 있는 청딱다구리여

너 일하는 소리 있어 숲도 비로소 이 세상이다


네 소리에 홀려 걷다보니 바스락바스락

이윽고 가랑잎 속에 푹푹 발 빠지는 걸 몰랐다

참나무숲인 걸 몰랐다, 바스락거리는 것은

발 밑만이 아닌 숲 전체인 것이니

갈참 굴참 물참나무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들

대개는 황갈잎 추하게 달고 한없이 바스락거리며

숲속의 정정한 고요를 여지없이 흔들고 있는

겨울숲에도 욕심으로 타락한 것들 너희다


아니다 아니다 참나무밭엔 돌보지 않은 무덤들

하나 둘 흙무더기로 주저앉은 무덤들

또또 애장무덤들 많아서, 어쩌면 그 슬픔으로

저 참나무잎들 참말로 떨어지지 못하고 우는도다


오호 그래서 죽음은 서러운 것이다

어느 무덤 둘레에 심은 산수유나무의 따내지 않은

그 열매를 쪼으고 있는 곤줄박인가 어친가 하는

그 새도 묻힌 자의 한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삐비비비 우는 소리에 저승내음이 묻었다


그러다 나는 어느 순간 새하얀 나라에 들도다

내 어릴 적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개간하다

돌자갈 많아 버린 그 개간지터에 심은

은사시나무떼 무단히 하늘 찌르게 자라서

그 시원히 벗어버린 알몸들이 새하얀하다

그 하얀 몸이 황갈색 조선숲 속의 이방인 같다

사람은 어리석어 숲속에다가 부조화를 연출했도다


이윽고 이윽고 나는 청설모를 쫒아간다

한 열마리나 되는 청설모떼가 쏟살같이 나타나

그 뒤를 허억허억 쫒았으나 청설모는 그만

나무와 나무 위로 몸을 날리며 사라지고

내 영혼은 마침내 웅엄한 교향악 속에 들었도다


머언 광야를 달려온 듯 웅웅대는 청솔바람소리

그 장엄의 소리는 꼭이 시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니고선 저러할 수 없는 청솔바람소리


그러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쏴아쏴아 지친 몸에 찬물 쏟아붓는 소리이다가

솨알솨알 쑥대밭된 희망을 빗질하는 소리이다가

급기야 부리부리한 눈 부릅뜨게 하여, 어느

먼 정신에게로 뜨거이 치닫게 하는 청솔바람소리


나 그 솔숲에 강렬한 경건함으로 서 있노라니

겨울숲은 다 벗어버리고 저 홀로 정정하다

겨울숲은 울음 깊어 저 홀로 성성하다

겨울숲은 제 품엣것들 모두 제 삶으로 엄정하여

나 그만 쩡쩡 추운 겨울숲에서 온몸 달아오른다


그 뜨거움에 겨워 계곡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뭔가 기척을 느껴 돌아보니 거기

웬 꽃사슴 한마리가 나와 눈을 딱 마주친다

저기 언덕 위 농장에서 뛰어나왔는지

웬 꽃사슴 한마리가 도망칠 줄도 모르고

어쩌자고 눈을 데굴데굴 굴려 나에게 웃는다

사람이 마음 씻으면 꽃사슴하고도 웃는다


산 내려오는 길 아이처럼 싱싱해져

나 홀로도 경건하게 깊어진 뒤 싱싱해져

쟁명한 하늘 쟁쟁하던 바람도 그윽해졌도다


창비1995 고재종[날랜 사랑]

감상평 : [새벽들], [날랜 사랑]을 읽었다

[새벽들]에도 (대동), (저 붉은 저녁놀빛)과 같은 훌륭한 작품이 있었다

허나 위의 작품을 실은 이유는 더욱 감미로운 언어유희가 있기 때문이었다

1957연도 생인 고재종 시인은 농부의 일생을 논한 시가 대부분이다

농심을 알게 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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