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4 / 김근
페이지 정보
작성자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회 작성일 22-05-15 22:16본문
1 이해에는 아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태어날 것이로다 아기들의 머리는 다 익은 박보다 커 제 몸의 서너 배에 이를 것이니 이들을 낳은 어미들의 가랑이는 모두 찢어져 너덜너덜해질 것이고 그중 어떤 어미들은 뱃가죽이 터져 죽고 아직 양막을 뒤집어쓴 아기들이 제 머리의 무게를 못 이기어 자꾸 고꾸라지고 고꾸라지고 할 것이로다
2 아기들의 머리 점점 부풀어 이해의 가물고 가문 어둠 속에서 마침내 펑펑 아기들의 머리가 터질 것이로다 바람 빠진 커다란 고무공처럼 쪼그라든 아기들의 머리에서 쌀뜨물 같은 물이 흥건하리로다 이 허여멀건 물에 닿는 자는 남자고 여자고 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머리 큰 아기를 낳을 것이리니 생산은 끊임없이 징글징글 계속될 것이로다
3 이해에는 또 이미 멀쩡히 자란 아이들도 그들의 성기가 여물 때까지 멀쩡히 자라나지 못할 것이로다 아이들은 하얗고 가지런한 이와 붉은 잇몸을 빛내며 환하게 웃고 히히덕거리며 제 가족의 살을 물어뜯을 것이로다 가족을 다 물어뜯고는 이번에는 제 이웃의 살을 그도 다 물어뜯으면 제 동무의 살을 물어뜯을 것이로다 뜯다 뜯다 뜯다 지치면 제 야들야들한 살을 물어뜯으리니 그때에도 환한 웃음을 멈추진 않을 것이로다
4 이해에는 꽃들이 모두 가래를 뱉어낼 것이므로 곡식과 열매의 값이 높이 치달을 것이로다 그나마 싱싱한 빛깔을 지닌 열매와 곡식 들은 이를 구해 먹을 사람이 적으므로 거의가 다 썪어갈 것이로다
5 궐 안의 연못 물고기들은 느닷없이 커지고 비좁은 연못에서 아가미를 여닫으며 파닥거리고 비좁은 연못도 느닷없이 커진 물고기를 따라 넓어지고 깊어지고 혜성들은 꼬리가 휘어지며 때를 가리잖고 곤두박질치고
6 뱀은 허물을 벗지 못할 것이로다 몇겹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몸부림치던 뱀들은 꼬리에서부터 제 몸을 입으로 삼켜들어갈 것이니 마침내는 모조리 제 몸을 삼켜 머리만 점처럼 남았다가는 그마저도 다 먹어치워 사라질 것이로다 나라가 이와 같을지니
7 이해가 오기 한 해 전부터 저잣거리에 이 말들은 두루마리로 은밀히 전해지며 떠돌 것이로다 말들은 오호 무섭게시리 새끼에 새끼를 치며 사람들의 온몸에 오소소 소름 돋울 것인데
8 왕은 이 말들을 퍼트린 최초의 자들을 잡아들이기에 골몰할 것이로다 대신들을 모두 수종을 앓기 시작할 것이로되 왕은 이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나 후일에 왕은 대신들의 옷을 모두 벗겨 수종을 음낭에 난 것까지 모조리 터트릴 것이로다 이 말들을 퍼트렸다고 의심되는 자들은 왕의 가까운 사관들일 것이로다 이들이 잡히는 날은 삼동에도 춥고 추운 날인지라
9 궐 안의 넓어진 연못도 두껍게 얼음이 이고 있으리니 왕은 이들을 묶어 연못 한가운데 세울 것이로다 아직 펄펄 살아 사람보다 커진 연못의 물고기들이 얼음 아래에서 머리를 부딪쳐 얼음을 깰 것이로다 얼음은 깨어지고 깨어진 얼음의 날카로운 조각이 죄인들의 목 댕강 잘려 얼음 위를 나뒹굴 것이로다 몸은 애진작에 물고기밥이 될 것이로다
10 왕비가 이들을 불쌍히 여겨 머리 하나를 무릎 위에 놓고 슬퍼할 것인데 이날부터 태기 있어 사흘 만에 배가 만삭처럼 부풀 것이로다 이레 만에 자궁을 찢고 태어난 아기는 다 익은 박보다 머리가 큰 아기일 것이니 왕은 그예 몸서리치며 아기를 그만 쥐도 새도 밤도 낮도 모르게 처분하라 이를 것이나 그 아기 저잣거리에 버려져 그 모든 것의 끝이 비로소 시작되리로다
창비2008 김근[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감상평 : 이 책은 두세 번정도는 정독을 해야 마스터가 가능하다
김근 시인은 이야기를 꾸미는 솜씨와 상상력이 탁월한데 반해 거친 단점이 드러난다
읽는 맛은 좋을 듯하면서도 나빠서 왜이리 탁한 시를 쓰는지는 모르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