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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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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성과 더불어 /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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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회 작성일 22-05-20 00:01

본문

문득 고추장 내음 코에 스몄다

숱한 형상 수많은 기억으로

갖가지 빛깔 소리로 인상으로

다가오는 밤, 어둠

그 속 고저장단 욕망과 기원

일허일영

절로 겹치고 변상되며

이 모두 껴안고 무한 공간을

열어주는 때


그러니까 밤 한시 십오분 중학교 시절

읍내에서 좀 떨어진 농촌에 살던

같은 반 친구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오던

그 맵싸한 고추장 내음 그것

이 시간 내 가벼운 공복은

어린 시절 내 혀가 비로소 매운맛에 익숙해지던

그 곰삭은 미각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내 공복은 또 친숙한 별 하나

어린 시절 어쩌다 바라보며 익혔던 별 하나

어둠속에 더욱 밝던 별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 샛별, 금성을

과학의 해명에 따르면

태양계의 거주 가능 지역 안쪽 끝자락에

살짝 걸쳐 있거나 혹은 벗어나 있기에

생명이 살기 어렵다는

그 금성을 눈앞으로 불러오게 하는데


이 도무지 연관성 없는 유동하는 생각

내일이면 어쩌면 흔적 없이 사라질

거품과도 같은 생각

우리 몸을 이루는 한 물질

쓰고 맵고 달고 신 음식들이

혀의 맛봉오리를 자극해 생기는 감각에서

이어지는 한 행성에 대한 생각

그러나 내 눈앞에 다가오는

그 금성이, 샛별이

생명이 살기 어렵다는 태양계의 한 행성이

만약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 한밤중

내가 자지 않고 있는 지금

밤이 내게

잠 없이 깨었음을 허락하는 이 시간

그 금성도

어쩌면 혹시 지금 저를 떠올리고 있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되는

지금 다시 밤 한시 이십분


약간의 가벼운 공복인 나에게

홀로 있는 나에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세요?"

하고 아무도

묻지 않는 밤


나 또한 누구에게

우리가 사는 지구와 같은 태양계의 행성 금성이

불현듯 문득 떠올랐는지

질문하지 않는 밤


지금 그 뜨겁고도 건조한 불모의 금성

그 금성이 내 뇌리에 새겨진 맵싸한 내음과 연결되는

시간은 밤 한시 이십오분...

밤 한시 이십육분...


그런데 정녕

그 금성이, 샛별이 다시 한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행성이라면

그 금성이, 내가 불모의 별이라고 생각하던 그 금성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행성이라면

부풀어오르는 건조한 폐허의 침묵 속으로

침묵의 숨결 속으로 나 또한 기꺼이 젖어 들어가리니

그리하여 나는 지금 한순간

내 가벼운 이 시간 공복을 그에게 소개하고

지상에서의 우리의 미각을, 맵싸한 인간의 미각을

전해주고 싶거늘


생각이란 어떤 하나의 실체가 또다른 실체 속에

한순간 함께 현현되어 나타나는 것일진대

삼라만상 또한

내가 지금 나이기에 존재하는 것일진대

다시 그리하여

나와 메마른 별

황막한 침묵의 별이라는 금성이 서로 그 폐허에서

하나의 예감을 일깨운다면


삶과 죽음에 무관할 천공의 별이여

내가 새롭게 너를 일러

이 지구에서, 지상에서 너를 일러

우리가 자주 일컫던 샛별이라

샛별이라 새롭게 부를지니

거기 옛날 우주의 영속하는 시간 속에

나와 같은 한 생명이 너일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우리 말할 수 있는가

우러를 수 있는가

우리에게 가장 멀고 희미한 것이

참으로 거룩한 희망일지니

너 별이여

아니 샛별이여

폐허의 예언을 말할 수 있는가

어둠속 거룩한 광명을

차오르는 예감을 드러낼 수 있는가

아득한 미답에서 더욱더 드높은 천체를 우러르며

느낌이란 또 결국 깨우치는 당사자와

깨우침 대상과의 관계일지니

관계란 또 대상과 당사자의 일체적 지향이니

내 유년 시절 어느 신새벽

가장 밝은 모습으로 동쪽 하늘에

떠오르던 별이여

축생들 눈동자에 어리던 행성이여


하지만 대체로 어둠속에 잠겨 있는 별이여

자독하는 천체여

그와 나를 이어주는 이 밤 시간

그 별이 침묵의 공간 속에 나를 우호할 수 있다면

별 하나하나가 하나의 세상!

나 또한 하나의 건곤이리니

본능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약한 인간의 밤 시간을 벗어나서

살육과 오염으로 탈진된 지구에서

거짓 평온 속 지구에서, 지상에서


더하여 메마르고 뜨거운 행성과 더불어

더 넓은 시간과 공간을 염원하면서

샛별은 지혜처럼 다시 동쪽으로 밝게 떠오르고

나는 내 가벼운 공복을 원욕처럼 지니며

또다른 아침을 맞이하겠으니


어찌 그 별 하나

우주의 성좌 속에

가채의 밝은 빛 저 홀로 품고

아무 까닭 없이

하나의 형체로만 떠 있으리

나 또한 깊은 밤 아스라한 추억과

미미한 공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지만 이것은 또

터무니없는 독단이지 않겠느냐!

천상의 모든 뭇별들 중

유독 반짝이는 그 별 하나

아득한 허공, 태허무변 속

아무런 연유 까닭 없이

목적 없이 형상되어 떠 있을 수 있을 것을

저 홀로 무위로 자재할 수 있을 것을

그것 또한 그대로

벅차고 충만하고 가득할 수 있을 터라

그리하여 나는 또 절망하느니


있음의 의미와 까닭을 묻는 것은

우리들의 습속이다

목적과 소용을 새김질하는 것은

대개 우리의 비루한 욕구와 기원과

갈망에서 연유한다

우리의 맹목은 우리의 맹목

우리의 척도는 우리의 척도일 뿐

그리하여 나는 또 전율하리니

그리하여 나는 또 갈망하느니


갈망과 절망은 우리들의 것

유한함과 무한함도 우리들의 것이다

절망과 갈망이 묻지 않느냐

무의미와 무소용이 묻지 않느냐

생명과 영원을 묻지 않느냐


그 무목적 그 무소용을 잊지 않고 지니고

끝내 간직함은 아득히 한없이

너울질지니


나를 벗어나서 다가오는 지평에서

내가 맞이하는 점과 점의 무한한 확산 속에

나를 넘어서는 공활한 생각의 그 세계에서

피어나고 살아나는 그리움의 층계들

지혜의 빛깔들, 향기들이여


우리가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스스로 다가가 불러들이는

순결한 세계의 순간들이여

우리가 그것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비록 내일 아침 익숙한 타성으로

이 밤 기억을 흘려보내며

한공기 밤과 국을 마주할지라도

모슬과 모슬과 모슬이란 도시

알레포 알레포 알레포라는 도시

큰물 져 휩쓸린 함경도 어느 도시

그 도시도 언뜻 떠올리면서

모든 빛을 품어 안은 하나가 되리

모든 어둠 품어 안은 하나가 되리


창비2018 김명수[언제나 다가서는 질문같이]

감상평 : 시인처럼 우리는 한번쯤은 별이 생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철학과 사상과 이념이 뭉쳐 종교를 만들고 이단을 만들고 샛별을 별로써 생각치 않는 것처럼

금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창의력은 신에게 종속된 수많은 상상력의 부산물인 것처럼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를 선과 악의 싸움에서 추락하는 루시퍼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영원과 대멸 그리고 극락과 지옥의 대립각을 세우는 치열한 인간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윤회처럼

위의 시인이 주장하는 것은 단지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미각과 식욕 사이의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함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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