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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에 쓴 시 11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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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8회 작성일 22-05-22 00:01

본문

마스크에 쓴 시 11

거울 속에서


1

그런데 자네들은 감염과 전염의 욕망으로 질주해오지 않았나?


비명을 지를까요? 듣는 귀는 표류 중입니다만, 나의 어떤 조각은 여러 지층을 휘돌며 분열 중이고 어떤 조각은 지상을 질주하며 감염되고 폭발합니다. 네, 앞마당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비행기들을 좋아했죠. 네, 모르지 않았습니다. 지구적 쇼윈도우, 쌓이고 매립되고 태워지고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 쇼핑 여행과 여행 쇼핑, 미식과 탐식과 폭식, 넘쳐나는 힐링 상품들, 인간 영혼을 어디까지 수선할 수 있을까요? 묻는 자가 조롱당하는 광활한 시장, 이윤의 운동에 감염되지 않으면 생존이 위험해지는 속도와 경쟁, 돈, 돈, 돈,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무한팽창하는 도시들, 네, 강 바다 공기 흙이 오염된 지는 너무도 오래이니 말 꺼내면 도리어 촌스러운 거였죠. 네, 모르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만... 어쩌란 말입니까. 갈팡질팡하는 나, 오염되고 감염된 나들이 모든 지층에서 우르르 쾅쾅거리는 소리를 매일 듣습니다. 무섭고 지겨워서 어느날은 소리쳐 보기도 합니다. 감연된 나들로부터 자유로운 나는 있습니까? 누구 없습니까? 하지만 보세요, 있다 한들 곧 감염될 존재 아닙니까? 나, 들, 나, 들, 나 들의 욕망에 전염되어야 사회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잖습니까?


2

자네는 기억력이 너무 좋군. 억울할 것 없네. 인간은 모두 마찬가지야. 최소한 한번은 역병으로 죽었지.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저번 생은 특히 그렇고요. 빌어먹을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결국 죽었다고요. 아시잖아요? 그 지랄맞은 전쟁이 자본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시장 개척 전쟁이었다는 걸. 제국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것도 억울한데 왼쪽 다리를 잃고 귀까지 먹고는 간신히 귀향하려던 차에 그놈의 바이러스에 걸려 뒈졌단 말입니다. 그 전 생에선 태어난 지 아홉달 만에 흑사병으로 죽었는데 연거푸 이건 너무하잖아요. 얼마나 억울했으면 다시 태어나는 데 오십년밖에 안 걸렸겠어요? 아니, 내가 화를 내는 건 바이러스가 아니에요. 그때의 독감과 COVID - 19 사이 백년이 흐르는 동안 누적된 감염의 실타래가 끔찍한 겁니다. 자본, 자본, 자본을 움직이는 그들, 자본, 자본, 자본이 움직이는 세상, 내가 죽던 그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전지전능해진 자본, 이윤만 발생한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돈의 노예, 자본교 말입니다. 실타래를 꼬아 내던진 손, 피라미드 꼭대기, 일 퍼센트 인간이 지구적으로 자본을 굴리는 동안 세상이 이 지경까지 온 거 아닙니까? 기후위기요? 인류 상위 십 퍼센트가 그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출해온 온실가스가 전체의 오십 퍼센트를 넘는다는 사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요. 저지른 자들이 거두어야 하는 책임에 대해선 입 닫으면서 인류의 도덕성을 말하는 입술들은 여전히 고상하고요. 그들에게 요구하라고요? 거깁니다. 내가 미치겠는 게. 그렇게 굴러가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정말 화나는 건 말이죠. 나 같은 구십구 퍼센트, 구십구 퍼센트 중에서도 딱 평균인 나 같은 인간들이 죄다 감염되고 있다는 겁니다. 아니요. 저 빌어먹을 바이러스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전에 이미 무엇엔가 감염되었다고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그 무엇을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그 무엇에 야금야금 감염되어온 거라고요. 지금까진 참을 만했어요. 감염된 영혼, 지독한 폐허의 느낌을. 죄다 그렇게 사니까요. 감염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서 감염되고 감염되고 감염되며 살았는데 저놈이 딱 나타나자 별안간 깨달아버렸단 말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할 틈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지옥에 처박혔던 내가 너덜너덜해진 몰골로 이번엔 진짜로 저놈한테 걸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젠장, 이게 뭡니까? 이런 생을 살려고 또 태어난 거냐고요! 싫어요. 지겨워요. 아주 지겹다고요!


3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인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4

제대로 도착했군!


뭐라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요. 안 하겠다고요! 사회인으로 나는 이제 끝장이란 겁니다.


5

축하하네. 바로 그거야. 자네 종족이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거기가 출발이네.


창비2021 김선우[내 따스한 유령들]

감상평 : 김선우 시인의 시는 매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아가씨의 위트가 살아있다

그녀는 COVID - 19의 감염병보다 자본주의에 찌든 폐기처리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논한다

위의 시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하는 것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읽게 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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