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숲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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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0회 작성일 22-05-22 23:36본문
안개 숲 / 박상수
멀리까지 숲은 깊었다 나만 알 던, 가끔 누워 있기도 하였던 묘지 주변으로 빗방울이 내리면 나무들이 웅크려 비를 막아주는 것만 같았다 잠든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은 길을 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올리던 오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람, 봉지약을 들고 찾아간 날, 약을 건네주고 오는 길은 낮은 기침소리가 따라오는 게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덧없는 꿈이었다 학교 앞 저수지로 걸어 들어간 사람의 검은 물빛을 떠올릴 때면 홀린 듯 그림자가 내게로 옮겨오곤 했다 텅 빈 운동장에서 누군가 빈 병에 소리를 내고 있구나 그때마다 잘린 녹음의 향이 퍼져나가다가 흐린 방을 만들며 강낭콩 깍지처럼 내 슬픔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빗방울이 자주 안개비로 바뀌던 곳, 그래서 걸음이 느려지던 곳, 오래 헤매는 마음으로 시내까지 나가서 아무나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오면 불을 끄고 벽에 기대어 선잠을 잤다 밤이 깊어지면 다시 숲으로 돌아가자고, 가로등 몇 개를 지나 바짓단을 적시며 어두운 길을 걸어 들어가면 비는 그치고 아직 살아 있던, 살아 있던 반딧불이가 저수지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몸을 떨며 사랑했던 것들을 무대 위로 올리는 밤, 그 많은 것들이 전부 사람의 얼굴이어서 나는 어느 쪽으로도 돌아누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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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띤感想文
어두컴컴한 숲이었다 기약도 없이 날아온 소장처럼 예정된 시간에 앉아 바라본 심판,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미 굳은 몸으로 조명탄이 오르고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꼭꼭 묶은 밧줄로 숨소리를 죽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마치 환풍기처럼 돌아가는 숲, 순간 다시 조명탄이 오른다 그때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가 몰려왔다 피비린내 나는 숲의 습격, 옆구리가 훅 떨어져 나간 흔적과 쓰러진 병사들 모두 까맣게 타고 있었다 긴 코트를 입은 그림자 하나 다가온다 전형적인 호모 사피엔스였다 마른 몸매에 키가 크고 입을 가렸다 자세히 보면 입도 없고 코도 없다 오로지 두 눈과 두 귀만 보였다 그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입을 놀리지 않았는데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결국 함께 갈 거라는 이상한 말만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가운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싸움은 계속되었다 좌우 대립 속에 수척한 거미, 실낱같은 절망을 믿으며 한 떨기 죽음을 당긴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손목의 존재, 하늘을 다 덮어버린 침묵과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물체의 착륙 긴 발톱 같은 세포가 내려온다 잠자는 귀신들 그리고 먹을 수 없는 오메가3 같은 캡슐들 어머니 젖줄 같은 관로가 끝없이 펼쳐진 공간, 망연자실하게 올려다본다 또 다른 무릎의 파괴와 또 다른 눈빛을 파고드는 두려움, 그냥 잊어야겠다고 젖줄 같은 관로를 도끼로 끊는다 아! 붉은 피, 끓어오르는 물방울과 타고 오르는 질문 이건 인간이 아니야, 저 비운 건물들 분명 또 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어떻게 이 무덤에 닿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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