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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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6회 작성일 22-05-24 22:05본문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 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鵲巢感想文
시제가 어두워진다는 것, 어둠이라든가 어둡다라든가 어떤 결과물이 아닌 진행형이다. 나를 넘겨주는 것,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한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시의 병렬적 표현으로 내면의 숙성화된 과정을 묘사한다.
시의 고체성으로 본다면 즉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5시 44분보다는 5시 45분이 더 가깝고 시의 안정성 혹은 훈훈한 어떤 감정은 슬픈 집 한 채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오히려 온기에 더 가깝다.
은수원사시나무는 버드나무의 일종으로 인위적으로 개량된 나무다. 여기서는 인위적인 어떤 표현 같은 것은 점차 삭제하고 실체 즉 군더더기 하나 없는 뼈대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다.
손등이라는 시어도 참 재밌다. 손의 바깥, 아니면 손에 잡을 수 있는 등(燈) 뭐 그 어느 것이라도 여기서는 시제에 부합한다.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억지로 맞춰본다면 손등(燈)에 시제 어두워진다는 것에 더 가까운 표현이다.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죽음에 이른 상태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의 탄생, 아니 누가 보고 있을지 여기서는 알 수 없는 상태, 즉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으로 묘사했다.
어쩌면, 시 쓰기는 성찰의 밭에서 고독이라는 모판에서 원석을 다듬는 과정, 그러다 보면 내면은 더욱 성숙한 단계로 나아지겠다.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이다. 시는 말할 순 없어도 이러한 해체는 아픔을 수반하기 마련이겠다. 독자의 마음이니, 금이 간 갈비뼈 하나 쓰다듬을 수 있는 저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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