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 / 김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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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4회 작성일 22-05-29 00:16본문
망월동
옥중의 고규태에게
1
여름방학 보충수업 팽개치고
뜨거운 남쪽 도시를 찾아갔던
소낙비 속을 흠뻑 젖으며 금남로 지나
도청 분수대 뒤편의 광주출판사를 찾아갔던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비를 맞으며
그 봄에는, 비가 아니라 우리를 죽인 총탄이었을
그 흉기를 맞으며 출판사를 걸어나와
금남로 충장로 남일빌딩 뒤편
지금 다시 불타올라야 할 방송국 앞 소주집에서
오월시 이형이 사준 술을 마시고도
나는 취할 것 같지 않았다
그 밤은 전혀 잠들 수 없었다
2
망월동 가는 길
광주교도소 지나 한참쯤 걸어 흙먼지 길로 접어들면
푸른 벼포기 눈부신 빛깔과 엉머구리 소리가
피멍울처럼 배어나오는 눈둑길을 질러
망월동에 다다르는 길은
여름이면 이 산천이 모두 그러하듯이
쑥부쟁이 돌쩌귀 조밥꽃들이
너무나 순결하게 피어 있었고
너는 지난 봄의
보리밭 싸움에 대해서 간간이 숨을 끊어가며
그때 못자리 논에 짓밟혀
흙투성이가 된 채 끌려간 친구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말없이 홀린 듯 숲을 향해서만 걸었다
망월묘지 가던 길
3
무덤 앞에서
죽음의 냄새가 채 사라지지 않은
팔월의 뜨겁고 끈적한 빛줄기가 나를 옭죄일 때
나는 숨막히는 듯한 갈증으로 목이 탔었다
살아생전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
그래서 더욱 그리운 형제들의 죽음 앞에서
소주 몇 방울 뿌려놓고 엎디었을 때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진실 앞에서
살아 있음이 그렇게 욕되게 느껴졌을 때가
또 있었을까
종내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곳
사랑과 역사
우리 나아갈 길을 다시 깨우치고 떠나온 곳
그때 두 손 꽉 움켜쥐던
너의 체온은 아직도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오늘 화살처럼 날아와 내게 박히는 소식 한 점
구속, 국가보안법 위반
그 엄청난 죄명은 망월동 가는 길목의 푸른 하늘
푸른 들판 꿈꾸며
푸른 세상 꿈꾸며 만들어낸
책 때문
창비1987 김용락[푸른 별]
감상평 : 그의 시는 70년대와 80년대에 멈추어 있었다
그의 시집으로 [푸른 별]과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를 읽었다
그는 푸른 별이라는 시집에서 엄청나게 파격적인 거침없는 시를 지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시집에서는 그런 파격이 사라지고 정신도 없어졌다
나는 그가 바라는 세상에 산다는 이유로 과거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아쉬움이란 언제나 세상이 변하듯 사람이 변하고 시인이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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