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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빅뱅 쇼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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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2-06-04 18:28

본문

이 이야기는 우주생성 비밀 이전의 비밀이길 바란다.

비밀이란 원래 공공연하므로 신화가 되기도 한다.


*등장인물 혹은 배경

A혹성: 남성과 여성 사이를 방황하는 혹성, 자신을 빨간 우산이라고도 생각한다.

B혹성: 세탁소 운영. 깨끗해지기 위해......

C혹성: A와 B 사이를 거주하는 정체불명의 혹성

내레이터

그외 바람과 구름과 다수의 비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당신과 나는 눈앞에 걸린 작은 창문을 통해 이 글을 끝까지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제1막 자기가 내지른 비명 소리에 놀라 세상엔 늘 비가 온다


A혹성: 비가 와요, 소풍을 가야겠어요. 혼자라도 이번엔 꼭, 물에 떠다니는 명왕성 명왕성......


# 비행기를 맡긴 세탁소

B혹성: 어서 오세요. 오늘 세탁기는 깨끗해요. 세제는 다행히 가루약이라 물에 잘 녹고요. 비행기는 잘 다려놨어요. 팔만 힘껏 흔들면 깨끗하게 날아가요.

A혹성: 시동 한번만 걸어주세요. (부우엉ㅡ부엉)

B혹성: 근데 어디 가세요?

A혹성: 여자친구 만나러 명왕성에 가요.

B혹성: 네? 여자? 여잔 줄 알았는데. 긴 머리칼에 큰 귀고리.

A혹성: 난 여자가 되고 남자도 돼요. 다시 말하면, 여자도 남자도 아니에요. 우산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펼쳤다 오므리면 뾰족해지는 빨간 우산. 다시 말해, 에브리바디거든요. 근데 그게 중요해요?

B혹성: 그건 아니지만, 무척 편리하다는 생각......(갑자기 뜨거운 목욕탕이 떠오른다.)

(C혹성 들어왔다 그냥 나간다.)

B혹성: 저는 남잔데, 요즘 할 일이 없으니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빨래와 뜨개질을 아주 잘하거든요.

A혹성: 그렇게 하세요. 대신 치근덕거리지는 마세요. 근데 뭐라고 부르죠?

B혹성: 그냥 '세탁'이라 불러주세요. 저를 그렇게 불러주면 왠지 깨끗한 사람이 된 거 같아요.

A혹성: (이상한!)

(C혹성 문을 열고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다 그냥 나간다. 불이 꺼진다.)


제2막 밤마다 내 영혼은 길을 잃는다


무대가 밝아지고 (이제부터 종이는 삭제된다) 비행기를 타고 둘은 날고 있다. 창문으로 행성들이 반짝이며 지나간다. 연필로 그린 창문에 비가 새어들어오고 비 오는 우주에 둘을 태운 비행기는 둥둥 떠 행성들 사이로 날아간다. 바람 약간 불고 비에 젖은 둘의 몸이 흔들린다. 희미한 웃음소리 들리고.

A혹성: 아, 오로라다! (방백 혹은 독백) 초록빛 바람이 부네요. 누구나 초록 아래에서는 나무가 되지요. 사람들이 아침마다 한줄로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나무가 되려는 것이에요. 나무들의 질서 속으로. 움직이면 벌 받는 나무. 다시 말해 초록 아래에서는 누구도 뒤를 돌아보면 안돼요.

B혹성: 갑자기 뜨개질을 하고 싶군.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 초록빛 실로 초록천을 엮어 초록 이불을 만들 수 있다면.

A혹성: 초록 바람이 불면 시간은 멈추었다가 거꾸로 흘러요. 우주의 또다른 세상으로 데려다놓지요. 남자는 여자로, 소녀는 소년으로. 기쁨이 초록의 우울로 넘쳐날 때 젊어서 죽은 자는 돌아와 자신의 말라가는 눈동자를 들여다본답니다.

B혹성: 왜 그러지요?

A혹성: 눈알이 마르기 전에 자신의 눈속에 고인 침묵을 꺼내가려는 거지요.

(C혹성 다시 나타나 둘의 비행기를 한 번 밀어주고 나간다.)


제3막 누구나 자신의 눈에서 자신의 슬픈 영혼을 본다


B혹성: 근데 명왕성은 아직 멀었나요? 꽤 멀리 온 것 같은데......

A혹성: 내리는 비를 따라 주욱 가면 돼요.

(서서히 어두워지고 빗소리만 들린다.)

(어둠속으로 피리 소리가 무대 바닥을 적신다. 양초를 들고 있는 손이 환해지고 뜨겁다. A가 흐느낀다. B도 흐느낀다. 시계 소리 째깍째깍.)

(다시 환해지고)

A혹성: 세탁, 왜 울었어요?

B혹성: 우산 따라 울어봤어요.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게 전 좋아요. 기분도 좋아졌고요.

A혹성: ?

B혹성: 우산은 왜 울었어요?

A혹성: 그ㅡ냥!

(C혹성 들어왔다가 그냥 지나치며 반대쪽으로 나간다.)

(약간의 침묵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B혹성: 당신의 우는 눈을 들여다보니 당신을 이해하게 됐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아니, 사랑해요. 이건 예정된 운명이에요. 당신을 따라나서는 순간, 당신을 위한 뜨개질만 생각났어요.

A혹성: (천천히) 저도...... 세탁소에 나의 종이비행기를 맡길 때부터 당신이 좋았어요.

B혹성: 정말 우린 운명이군요. 그만 돌아가요. 너무 멀리 왔어요.

A혹성: 네, 좋아요.

B혹성: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그런데...... 명왕성에 있는 당신 여자친구는 어쩌죠?

A혹성: (먼 곳을 바라보며) 그곳은 이제 또다른 기적이 시작될 거예요. 당신을 사랑하는 순간...... 당신과 내가 같은 행로를 날아가듯. 모든 가능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난 믿어요! 사랑만이 우주의 유일한 마법이에요.

B혹성: (확신에 차서) 그래요,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 우린 이미 정해진 하나의 시간 위를 걷는 행성들이죠. 어쩌면 우주 건너편에 기대어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 잠드는 작은 벌레일 수도......

A혹성: (독백 혹은 방백) 맞아요, 작은 벌레...... 벌레들...... 우는......

(둘은 손을 마주 잡고 사라진다.)


제4막 1+1=0


# 다시 세탁소

B혹성: 같이 살기엔 좁지만 이 안으로 들어오세요.

(둘은 세탁기 통 속으로 들어간다.)

A, B혹성: (합창으로) 아아, 빙빙 돌고 있어요. 어지럽지만 기분은 좋아요.

(무대는 점점 어두워지고 둘의 목소리가 교성처럼, 때때로 흐느끼며...... 서서히...... 합체...... 멈춰 있던 당신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고 시계 소리 점점 빨라진다. 째깍째깍. 아주아주 점점 어두워진다.)

삼색조명이 느리게 무대 한구석을 비춘다. 그곳에 팔다리가 뒤엉킨, 우리가 처음 보는 합체된 인간 '빨래인간'이 우두커니 서 있다.

A+B: (혼성합창의 목소리로) 이곳은 물소리 바람 소리만 들리는군. 인간이 없네. 정말 없네. 정말 없네. 정말 없네.

# (벌레에 가까운) 새로운 종의 탄생. 이 이야기 속에 당신이 길을 잃었다면 당신은 이미 이곳 신화의 관객이며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본 목격자이자 피해자이다. 머리를 흔들면 더듬이가 곧 자랄 것이다.

(밤마다 자신의 영혼을 물고 새는 잠든다. 빗소리 점점 커지고) 

# 멀리서 들리는 늙은 여자의 흐느낌ㅡ

우리가 내지른 비명 소리에 놀라 세상엔 늘 비가 온단다.


창비2015 김재근[무중력 화요일]

감상평 : 가장 긴 시를 뽑아서 올리게 됐습니다

뜬금없이 사랑이야기로 흘러가는 신화적인 시라는군요

내용에 비약이 숨겨져 있지만 나름 긴 호흡의 장문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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