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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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3회 작성일 22-06-05 12:26본문
터널 / 송재학
터널을 지나가는 기차는 밤의 솟대를 가졌다 밤이 어두운 게 아니라 이것은 캄캄해지기 전 내가 품었던 의심, 지상에 없는 어둠이 우리를 덮었다 터널을 통과할 때 기차는 산의 중심을 다시 뚫어야 한다는 앙다문 결심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터널마다 찾아다녔다 바퀴와 부딪치는 레일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불꽃이 피었다 그게 무언지 알기 위해 길고 긴 기적 소리가 필요했다 허벅지 연한 살을 씹으며 기차가 지나갔다 무릎 연골을 파먹으며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가 오기 직전에야 들숨이 허락되고 터널이 열렸다 괴물이 괴물을 달래는 순간 공기는 멈춘다 터널 속에 몇 개의 등불을 남겨놓았다는 기차, 기차 꼬리가 보이지 않자 죄의식을 삼키는 중이라는 터널, 뼈만 빠져나왔다는 기적 남기고 터널은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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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띤 感想文
행로
심한 가뭄이 연속적이다. 어디 다녀올 때도 없는 이 아픔을 죽이기 위해 책을 펼쳤다. 내 영혼의 피뢰침이 곤두선다. 이것은 고독을 죽이는 행위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백혈병처럼 앓은 빈혈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상을 붙들고 있는 의식임을 내심 말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책은 내 어머니다. 아니 내 아버지다. 그 중심에서 산울림 같은 선계를 받으면 앙다문 입술은 터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러한 시간의 바퀴가 밤의 행로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벗는 어떤 악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내 귓가에는 신음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어딘가 떠나 있는 박쥐의 초음파에 이미 출구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낙선으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책을 열었다. 더욱 뭉툭한 코, 점점 더 커가는 귀에 오천만 년이라는 긴 이빨로 아직 물 수 없는 슬픔을 얘기할 뿐이다. 너는 길짐승이란 말인가? 아니면 날짐승이란 말인가? 어느 쪽도 닿지 않은 비애의 밤 거적을 피로 물들이는 행위, 그 길고도 긴 뼈의 둥지를 벗어 새벽을 건다. 칠흑 같은 장애물을 깨뜨리며 고독의 바나나를 벗겨 그 꽃가루를 묻혔던 화신, 혼돈과 무질서가 소심증을 벗어던진 그 거적까지 삶의 행로를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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