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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 / 김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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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회 작성일 22-06-05 22:35

본문

1

모양을 담느라 제 몸을 흩뜨리면서

너무 마구 흐트러지면 안되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는지

색이

어딘지도 모르는 제 몸

각각의 부분을 명사, 동사, 형용사,

형동사 따위 품사로 만든다.

꼴이 어떻든, 해가 지는 꼴이라도

색이

색으로서는 최대한 화려해보겠다는 거지.

누가 말리겠나, 귀찮게 공들이고 힘들여

살 섞을 육체 없이

미인을 통째 겪는 일인데?

단 활용어든 행 변격 활용이든

수신, 자발, 가능, 존경, 사역, 타소

과거, 영탄, 완료의 조동사든 조사든

미연이든 연체든 이연이든,

이것들이 지들도 벌써 색 없이 웬

색 없이 미인을 벌써 통째 겪는 중

흑백이 뭉툭한 1940년대 다큐멘터리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빛바랜 것도

인물이나 배경이나 배경 음악 아니라

시대나 시간 아니라 필름

인화라는 것처럼.

과거가 자연 속에 있고 과거가 바로

자연이라는 것처럼.


2

냄새가 향에 향이

색에 이르기 전

색이 향에 이르는

잠자리

날개 날고 네 엉덩이

오동나무 항아리,

똘똘 뭉쳐 거대하게 텅 빈.

처음부터 너무 슬픈 내가

그 안으로 다시 색을 입힐 수밖에

없으니 내 몸이 제야의

종소리 울리는 물감이다.

네 몸이 휘파람새, 두견이

새해 처음 우는 소리를 내며

내 몸이 그때그때 잘생긴

상록수, 상록수 기둥

향기 나는 나의 궁이고,

그후 네 몸이 꽃잎 나분분한

내력이고 마을이고

그후의 그후

이승이 환영 없는 매미

허물일 때까지 쑥밭

우주가 집이고 아늑한 방이다.

차 끓는 소리, 소나무에 바람 소리.

저녁 안개로 번지는 청

귀뚜라미 소리.

밤이면 반딧불이, 반딧불이,

색이 향에 이르기 전

향이 색에 이르는

나비

날개 날고.


3

음악이 이미

흘러갔으므로 음악일 것이다.

우리가 듣는 음악이 흘러가는 소리 아니라

흘러갔던 소리일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모양 너머로 흐트러지는 색일 때

최초로 흘러갔던 음악을 최초로 듣고 싶은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흐트러짐 너머로 흐트러지는

색일 때 최초로 흘러갔던 시간이 그렇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고 싶다.

그래서 음악이 심지어

입을 수 없으므로 가장 육체적인 육체를 입는다.

그리고 그 소원을 발하였으나

음악을 들을수록 우리가 더

색이다, 이미 흘러갔으므로 음악인

음악에 묻어나는.

음악의

자살이 엉뚱한 육체를 혼동한 것일 수 있다.

얼마든지 물 위에 배를 띄울 수 있고 물 위에

떠 있는 쪽배일 수 있다.

엷은 구름일 수 있고 꿈속을 떠가는 다리가

단풍을 맞을 수 있고 붉은 빛깔 매화일 수 있다.

지명이 순례거나 유배다.

방향 없고 방황 없다.

흘러간 것만 흘러갔다. 그것이 색의

공 아니고 비움이다. 자세히 볼수록

모양 말고도 자신이 품고 있는 것들을 죄다 내다버리지.

어쩌다 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4

구름 아니다. 비 아니다. 너와 나 사이 정말

강물이 흐르기는 흘렀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의

증거를 이만큼이나 남겼으니 아주 세차게

흘러서 너와 나 사이를 흥건하게 적셨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더 굵직한 데를 깎아내고

지워버렸겠지. 아니면 우리가 불덩이로

타고 있거나 불타버리고 사랑이라는 말의

증거만큼 우리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왜 색이 눈물보다 더 눈물겹게 바래겠는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우리가

천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쌓은 후 비로소 천년을 기다릴 수

있는 우리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바랜다.

지나놓고 보면 더욱 먹구름 아니다. 장맛비,

폭우 아니다.

너와 나 사이 정말 몸과 몸으로 피리 소리와

피리 소리로 강물이 흘렀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 증거일 뿐 아니라 슬픔이

저 혼자 일그러지는 장식이다. 우리가

슬픔을 일그러뜨리는 장식

아니라는 게 사랑에 남은 다행이지.

오늘이라는 거, 화톳불 사랑이

조금 더 색 바래는 간절이 있을

예정에 다름 아니다. 색다르게

엿듣는 이

없을 것이다.


5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파릇파릇

갓 태어난 것들이 파릇파릇 엿듣는다.

아주 잠깐이다. 엿들으려 태어난 것보다 아주

조금 더 깊이

태어남이 엿듣는 것인 것과도 같이.

왜냐면 파릇파릇도 탄생 이전에

빛바랬다. 생명이 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기분 좋다는 게 그거거든.

우리가 나이 든 건지 파릇파릇이 수억년

나이를 먹은 건지 기분 좋게 헷갈리고

헷갈림이 우리의 미래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 미래가 우리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서도 기분이 좋다.

미래 문제라면 우리가 얼마든지

빛바래며 얼마든지 파릇파릇할 수 있다.

속삭일 수 있다, 우리의 미래,

사랑이 죽음의 연습 아니라 죽음의

나이이고, 죽음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빛바램일 것을.

속삭일 수 있다, 우리가 젊어서 그 사실

알았더라면 색바램 더 짙고 더 완벽에

가까울 수 있겠으나 젊어서는 그 사실

결코 알 수 없고 어제의 젊음이 오늘의

젊음한테 굳이 전수할 수 없다는 점을.

대체 우리가 언제 늙음의 역역으로

들어선 거야?

그 질문을 우리가 탄성으로

바꾸어 속삭일 수 있다.

늙음이 미래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우리 둘만의 미래를.


6

식물은

뿌리내리고 서 있다는 것이 도무지

무슨 일인지 모르는 자세의

흘러간다는 것이 도무지 무슨 일인지

모르면서 흘러간다는

뜻일 것이다.

수천억년 동안 식물인 적 있는 우리가

식물이 그 햇수를 다만 숫자로 기억하고

그 숫자가 식물에게

타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식물이 봄여름가을을 우리보다 더 잘나지만

겨울을 난다는 것이 도무지 무슨 일인지

모르면서 겨울을 나고 모르면서 깨어난다.

우리보다 더 분명하지만 우리보다 더 모르는

단절과 이어짐을 겪는다.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지만 우리보다 더

행복을 모른다.

왜냐면 우리가 겨울을 향해 생애를 쌓아왔다.

백년을 못 사는 불행으로 행복의

개념을 안은 우리에게 숫자가 타자 아니다.

늙어서도 우리가 식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숫자의 색이 바래는 까닭이고 그 까닭이

늙은 네 안의 젊음을 갈수록 도드라지게 하는

까닭이고 그렇게 말고는 우리가 젊음의

개념을, 젊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

제대로 알 수 없는 까닭이다.


7

젊어서도 젊음이 이미

흘러갔으므로 젊음이다.

나이를 먹으며 갈수록

나를 향해 현대화하는

그림의 역사 같고, 감쪽같다고 해야겠다.

네가 거기 앉아 있는 것이.

풍경의 윤곽이 풍경의 윤곽을

모은다고 해야겠다.

네가 너의 젊은 날이고 나의

곁인 것이.

혈색이 혈색을 부추기는

붉은색

생애라고 해야겠다.

너를 향하고 위하는 나의 색바램과

나를 향하고 위하는 너의 색바램의

몸 없는 충돌을.

예리한 경악이 색바램보다 더 깊게

색의 나이를 쌓아간다,

나이보다 더 오래되게

네가 안식한다. 너의 안식보다 더 낮게

내가 눕는다.

육체가 육체로서

허물어지는 거다.

허물어지는 거다.

허물어지는 거다, 너의 안식 밑으로 밑으로.

내가 사랑이라는 말의

마지막 증거로 너의 여성 상위의

색일 때까지.

네가 사랑이라는 말의

마지막 증거로 나의 남성 하위의

색일 때까지.

너와 나 한 몸으로

색바램이 색바램의 색 바랜

색일 때까지.


8

네가 없으니 내가 없고 내가 없으니 네가 없다.

네가 없어서 내가 없지 않고 내가 없어서 네가

없지 않다. 당연하다. 왜냐면 모든 죽음이 사랑의

요절이다.

색이 색을 품고 따스하다. 찬색도

찬색 품고 따스하다. 따스하게

품어서 따스하지 않고 품음이 따스하다.

남은 색이 남은 색을 무한수 겹과 깊이와 내면

폭의 육 차원으로 품어서 따스하다.

품는 모양이 품는 색일 때까지 품는다.

색에서 색을 떼어내는 것

어불성설일 때까지 품는다.

색의 색 속에 어, 불, 성, 설이 있고

색을 색에서 떼어내는 어불성설을 뺀

모든 것이 있다.

네가 없이 길길이 뛰어도 색이 흐트러지지 않고

내가 없이 길길이 뛰어도 색이 흐트러지지 않고

저 혼자 길길이 뛰어도 색이 색의 주소고 눈물만

한방울 떨어졌었다. 그것이 색바램이었다.

너여 너의 나와 나의 너여 그 둘의 합이여

얼마든지 없으라.


창비2018 김정환[개인의 거울]

감상평 : 김정환 시인의 시집 6권 중에서 맨 마지막에 쓰여진 [개인의 거울]

위의 시집은 기성시인이 갖출 수 있는 시의 품격이 드러나는 훌륭한 시의 묶음이다

그 중에서 위의 시는 사랑에 대하여 아주 멋들어지게 표현하였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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