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의 변주1 / 김준태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오르페우스의 변주1 / 김준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2회 작성일 22-06-10 20:38

본문

오르페우스의 변주1

사랑이 이제, 쇠붙이도 사람으로 바꾸리라


사랑이, 이제 세상을 바꾸리라

사랑이 이제, 죽음을 생명으로

총칼을 백합꽃으로 변신시키리라

쇠붙이도 사람의 살로 바꾸리라

오, 사랑이 이제 만물의 조물주로

산과 강을 벅차게 창조하리라


오르페우스가 그의 악기 리라를 켜며 광주를 방문했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의 맨끝까지 찾아갔던, 그리스 트라키아지방 태생의 시인 오르페우스. 그가 오늘은 동방의 코리아로 문든 떠나와 비무장지대 DMZ철조망 속을 헤매이다가, 광주라는 조선남도 남녘의 한 도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아, 그 노래 시인이 죽지 않고 먼 훗날 사람들인 기계 속의 우리를 찾아와...... 꽃을 보면 꽃을 노래하고 새를 보면 새를 따라가며 노래하고,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마다 멜로디를 불어넣으며 리라를 퉁긴다고 한다. 만날 수 있을까. 만나서 그와 함께 혹여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망월동묘지도 둘러볼 수 있을까. Skin of animals라는 자동차들이 여느 도시에서나 그렇듯이 광인처럼 질주하는 광주, 한때 학살자들에 맞서 사랑과 평화와 혁명에 몸서리쳤던 오늘의 거리마다 문명의 쇠몽둥이와 기름덩이 뒤죽박죽 엎질러지는데, 나는 정작 그를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숨통과 가슴통을 맞부빌 수 있을까.


혹시 오르페우스를 보셨는지요

어깨 위 리라를 걸쳐 메고

맨발로 흙냄새 풍기며 걷는

트라키아의 시인, 오르페우스

전세계를 방황과 방황으로 살아온

슬픈 그 시인의 노래와 열정


광주를 분명히 방문한 오르페우스를, 그러나 시민들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가 천상과 시옥의 노래를 번갈아 불러가며 어깨곁을 지나가도, 시민들은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뿐이랴,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퉁기며 노래를 불러대도, 그의 나라 나무와 똑같은 밤나무의 잎새들은 더이상 춤을 추지 않았다. 온갖 나무와 꽃들은 더이상 오르페우스의 발자국을 따라오지 않았고, 기난날 그의 음악에 맞춰 들먹들먹거렸던 산비탈의 바위들도 좀처럼 들먹거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폴론 신이 직접 물려준 리라 악기의 현은 아직 그대로인데, 그 멜로디의 울림도 그대로인데, 옛날처럼 나무와 꽃 그리고 구름과 바람은 음악의 귀를 열지 않았다. 광주의 한복판을 흐르는 강물은 쥬라기시대의 석탄처럼 온통 시커멓게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 역시 레이저광선에 두 눈이 찔리어 맹인처럼 걸을 뿐, 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덤을 송두리째 아파트업자들에게 팔아버리고, 그 뼈들은 썩은 폐유의 강물에 훌훌 뿌려버리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그러나 그는 노래를 계속했다.


사랑이 마르면 가슴이 마른다

사랑이 마르면 삶 또한 시든다

사랑을 간직해야 수선화가 피어나고

사랑을 간직해야 새들이 날아온다

오, 열정의 불꽃으로 육신을 세우고

날카로운 손톱일랑 깎으며

서로의 마음속에 물빛 눈썹을 던져야하리

한 주먹의 흙과 자연을 위해 방황도 하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그대들이여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일생을 바쳐야 하리


사람들의 목숨이 일회용 반창고처럼 떼였다 붙여지고, 사람들의 영혼마저 일회용 컵라면처럼 엎질러지기가 수업이 되풀이되는 저 국토의 끝, 광주에서 그러나 끝끝내 만난 신의 혈통 오르페우스는, 계속해서 노래한다. 디오니소스 숭배에 미친 마이나테스 신녀들이 고속도로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해도, 아내 아우리디케를 찾아가다가 발견한 저승의 망령세계 비밀을 누설했다 해서 제우스 대신이 벼락을 내리쳐 죽이려고 해도,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이윽고는 복수의 여신 에리뉘에스들과 악마의 후예들까지 리라 악기로 눈물을 흘리게 해버리는...... 고독한 운명의 사나이 오르페우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왕관을 빼앗은 다음 어머니를 자신의 아내로 왕비로 삼아 결국은 그 죄악으로 눈이 먼 오이디푸스왕처럼 끝없이 방황과 방황을 거듭하는 시인 오르페우스! 그러나 그는 사랑의 노래를 계속한다. 전신주가 밤나무 되도록, 철근에 수액이 오르도록, 전등알이 꽃송이로 펴오르도록 노래한다.


사랑이, 이제 세상을 바꾸리라

사랑이 이제, 죽음을 생명으로

총칼을 꽃과 나무로 변신시키리라

자동차의 쇠붙이를 사람 살로 바꾸리라

오 사랑이 이제 만물의 조물주로

보이고 혹은 안 보이는 하눌님이 되리라

천지간의 모든 생명과 사물의 두께 속에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시가 담긴다면!


창비1994 김준태[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감상평 : 내가 오르페우스가 된 기분이다

황홀한 장문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오르페우스

참말로 김준태 시인이 오르페우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170건 26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920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 0 07-06
2919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 2 07-05
2918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5 2 07-04
291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 0 07-04
291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 0 07-04
2915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0 07-03
291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0 0 07-03
2913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 0 07-02
2912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 0 07-02
2911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 0 07-02
2910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0 0 07-01
2909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 0 06-30
2908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0 06-30
2907 흐르는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 0 06-30
2906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 0 06-29
2905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 0 06-29
2904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 0 06-29
2903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0 06-28
2902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 0 06-28
2901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6 1 06-28
2900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 0 06-27
2899
밀물/ 장대송 댓글+ 1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 1 06-27
289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 0 06-27
2897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 0 06-25
289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7 2 06-25
2895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8 0 06-25
2894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 2 06-25
2893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1 2 06-21
2892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 0 06-21
2891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9 0 06-20
289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 0 06-20
2889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 0 06-18
2888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 0 06-17
2887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 0 06-17
2886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6 0 06-17
2885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 1 06-16
2884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 1 06-13
288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4 0 06-13
2882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 0 06-12
2881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 0 06-11
2880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 0 06-11
열람중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 0 06-10
2878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 0 06-10
2877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7 2 06-07
2876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9 0 06-06
2875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 0 06-06
2874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3 1 06-06
287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6 0 06-06
2872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 0 06-05
2871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 0 06-05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