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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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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2회 작성일 22-06-2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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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鵲巢感想文

    글을 쓰고 노는 일은 고차원적인 취미다. 물론 시를 파악하고 인식하며 왜 그런지 이해를 가지는 시간은 불과 십오 초일지라도 말이다. 십오 초의 경과와 십오 분 아니 한 시간 15분을 드린다면 시 한 편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이해와 쓰기는 극과 극이다.

    우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왜 이런 글을 쓸까 하며 바라본다. 소모적이며 어쩌면 비생산적인 경제 활동이나 다름없는 짓거리다. 시인 문정희는 시인은 헛짓을 하며 즐거워하는 부류라 시속에서 얘기한 바도 있다. 어쩌다 기념비적인 시비를 세웠다고 해도 얼마 후면 그 기둥 아래 동네 개가 오줌이나 싸놓고 지나갈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시는 시인께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차가 불 켜 놓은, 양 가로등과 같은 존재다.

    위 시는 행 가름이 돼 있으나 일부러 붙여 타자했다. 시인께는 송구한 일이지만, 독자의 마음으로 읽기 편하게 필사했다.

    아득한 고층 아파트와 태양은 대립관계다. 아득한 고층 아파트는 위급한 상황을 대변한다. 태양은 시 주체며 낮달은 이상향이다. 치욕은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내보였으니까 어쩌면 시 인식이다. 존재의 파악과 존재의 멸망이다. 이 순간은 시인께서 십오 초로 규정한다.

    시를 읽는 독자, 즉 다른 시인은 어떤 방법으로 인식하며 읽을지는 모르나 그 길은 작가와 다른 방도로 휜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모든 변명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고 명명하는 것이다.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시에 대한 인식은 시인과의 소통이다. 그 소통의 시간은 비록 십오 초라도 늙어가는 존재다. 마치 하늘 향해 뚫은 지붕이 하늘로 솟는 비처럼 인식의 흐름을 낳는다. 그 인식의 흐름은 시를 쓴 작가와는 사랑으로 통한다. 어쩌면 모든 시인은 이러한 사랑을 원하며 꿈꾸는 존재다.

    누구나 잘 아는 일이며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며 말이다.

    태양, 시 주체다. 한 편의 달을 갈구하는 몸짓으로 빛을 쥐어짠다. 그것은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순간적이며 미래를 찾는 일이거니와 또 과거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이것은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듯이 말이다. 고양이는 초식동물이 아님을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獨自性藝術性을 강조하는 말임을 말이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차 맛을 음미하는 일, 특정한 차 맛을 여기서 강조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금 심보선의 시를 읽고 있는 것이지 그 누구의 시를 읽고 감상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 주목하자.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한 일,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왜 울면서 타고 가는 것인가? 언젠가는 넘어지거나 멈춰야 할 일, 인식이나 존재 그리고 정박과 어둠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그 길의 과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 시인이며 이는 현기증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과 마찬가지다.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나갔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인식은 끝난 일이며 그것은 죽음으로 다른 환생을 꿈꾸는 일, 이는 시의 또 다른 인식의 존재를 찾는 과정이다. 존재를 찾지 못하고 사장된다면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지는 길이 .

 

    ================================

    시인 심보선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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