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번진다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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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1회 작성일 22-07-02 20:05본문
바다가 번진다 / 송재학
바다가 번진다 흰 갈퀴 뻗대는 볏이 있다면 귀 없고 눈 없고 입 뭉툭하지만 파도의 맨발로 바다가 번진다 내 작은 몸에도 수면이 있어 바다 이야기가 있다 지쳐 있고 다소곳한 걸음만 본다면 바다 쪽은 파도의 뒤꿈치이다 내륙에도 소실점을 세우고 싶은 바다가 가진 수평의 욕망이라면 파도는 끝없이 내륙을 쓰다듬고 파헤치고 발기는 손발의 뼈 같은 것이겠지만, 내륙의 살을 만지려는 욕망이 더 간절하기에 파고(波高)라는 은빛 갈등으로 바다가 번진다 일몰과 일출이 필요한 내 몸에도 수시로 바다가 도착했다 바다가 번질 때마다 파도의 등 푸른 언어가 필요했다 조사(弔詞)가 있어야만 했다 뼈가 허옇게 드러난 내륙의 상처를 핥으며 바다가 번진다 기름지느러미 퍼드덕거리며 물고기가 실어 나른 1만 개의 비늘이 내륙에 도착했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짐작한 사람들은 내가 죽은 뒤에도 바다는 수평선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얼띤感想文
시제 ‘바다가 번진다’ 詩를 읽고 感想하는 일도 어쩌면 참 고상한 취미라 할 수 있겠다. 글을 쓰는 재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바다 같은 글, 바다 같은 시적 어떤 융합물融合物의 총체總體다. 그러면 이와 극이 될 수 있는 詩語는 무엇인가? 내륙內陸이다. 즉 자아다. 바다가 번진다는 말은 詩를 통해서 이미 융합적이며 체감한 상황을 말한다.
흰 갈퀴 뻗대는 볏이 있다면 귀 없고 눈 없고 입 뭉툭하지만, 여기까지는 독자가 처한 상황적 묘사다. 지면을 묘사한 것이다. 지면은 詩의 끄트머리에 가면 수평선과 얼추 비슷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지면이 초기의 단계를 묘사한 詩語라면 수평선은 복제의 의미로 수만 개의 알을 잉태할 수 있는 지면을 묘사한다.
파도의 맨발도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바다다. 詩가 어떻게 독자에게 가는가? 바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한 이 詩는 파도를 안 끄집어낼 수가 없다. 이는 詩 중간쯤 보면 파고라는 은빛 갈등으로 고조된다. 파도의 높이가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詩를 쓸 수 있게 하는 전초 단계까지 몰고 가는 것이겠다. 누구나 인생에서 파도가 있고 그 파도의 높이는 다들 높낮이가 있다. 순탄하게 가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의 역행을 별로 좋아하는 이는 없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삶은 없기에 말이다. 만약 열심히 살았다면 말이다.
지쳐 있고 다소곳한 걸음만 본다면 바다 쪽은 파도의 뒤꿈치다. 내 가슴에 어떤 감동과 그 감동의 결과로 이룬 詩 쓰기 그리고 그 생산물을 바다로 본다면 언제나 바다 쪽은 파도의 뒤꿈치가 맞다. 여기서 말한 바다는 詩의 總體的 의미라고 아까 설명한 바 있다. 내가 쓴 詩만 바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물은 바다로 들어가듯 모든 詩는 詩의 世界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詩의 세계는 어마어마하다. 마치 종교화되어 간다. 詩에 맹신적盲信的이고 詩에 미쳐 있다면 말이다. 이런 거 보면 필자는 아직 멀었다.
내륙에도 소실점을 세우고 싶은 바다가 가진 수평의 욕망이라면 파도는 끝없이 내륙을 쓰다듬고 파헤치고 발기는 손발의 뼈 같은 것, 한마디로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그 욕망을 일깨울 어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논한다. 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데 물체가 꿈틀거리지 않듯 마음도 마찬가지다.
일몰과 일출이 필요한 내 몸에도 수시로 바다가 도착했다 바다가 번질 때마다 파도의 등 푸른 언어가 필요했다 조사(弔詞)가 있어야만 했다, 일몰과 일출은 실지 일몰과 일출이 아님은 이제는 알겠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즉 시적 동요와 시적 소멸 즉 시인이 말한 소점(소실점)이 수시로 교감이 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수평선에 이르기까지는 파도의 등 푸른 언어가 필요했다고 하는 표현도 아주 좋다. 글을 쓴다면 각종 도구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고기를 낚는데 맨손으로 잡는 이는 잘 없을 것이다. 고래를 잡으려면 그만한 도구가 필요하고 참돔 한 마리 제대로 잡으려고 해도 낚싯대는 기본이겠다.
지금 나는 또 다른 詩를 잉태하기 위한 전초 단계 조사弔詞를 쓰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자.
그러므로 다음은 물고기가 나온다. 물고기는 어다. 어漁와 어語 동음이의어로 여기서는 바다와 파고 그리고 내륙의 시적 흐름을 읽는다면 어의 개념과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좋은 글쓰기가 나올 수 있음을 말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바다는 수평선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내가 죽었다. 즉 한 편의 글이 나왔고 이는 발표가 되었으므로 또 어떤 이는 낚싯대를 들고 이 詩를 읽을 것이다. 고기를 낚은 이는 내 마음에 비친 파고로 그것을 대변한 좋은 글쓰기를 낳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 다른 지면 여기서는 수면이라 했고 시의 끝은 완전한 표현 즉 표현한 그 마음은 수평선에 이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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