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지나간 끈적임처럼 /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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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9회 작성일 22-07-04 02:25본문
달팽이가 지나간 끈적임처럼 / 장옥관
달팽이가 지나간 끈적임처럼
젖은 마음 지나간 자리에 흉터 돋 듯 움직임은 늘 제 자취를 남긴다 저 잔잔하게 흐르는
흐름 속 발끝으로 서서 구르는 돌멩이
아문 상처에 내민 새잎 흔적
내 머물던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검게 탄 타이어 자국에 미처 씻어내지 못한 혈흔처럼 시간은 모든 걸 쓸어 담아
지금, 출렁이며 흐른다
입 빼물고 수런거리는
노랑어리연 아래 어제의 투명했던 잠자리 날개 찢어져 젖고, 검은 진흙 속 굵어가는 구멍들
어디로 가는 걸까,
소리 없이 길게 뻗은 저 흰 비행운
* 장옥관 :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1987년 <세계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등 다수
#,
천형 같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달팽이의 발걸음에서 일어나는
끈적임을 모티브로 화자의 상상력은 나래를 편다 저 끈적임은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산(辛酸)을 비유한 것이리라
흐름 속 발끝으로 서서 구르는 돌멩이, 아문 상처에 내민 새잎 흔적
검게 탄 타이어 자국에 미처 씻어내지 못한 혈흔 등 험란했던 한 인간의
인생사를 연상 시키는데,
결기와 좌절 그리고 투혼으로 점철된 피끓던 시간들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처럼
이제는 끝났다는 듯 할 일 다 했다는 듯
절뚝이는 다리 이끌고 먼저 간 동반자 무덤 찾아
초승달 뜬 고개를 넘어가는 한 노인의 뒷모습 같다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태양이 지는 것은 새로운 태양을 기약하기때문
지는 태양이 아름다운지 뜨는 태양이 아름다운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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