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의 내간체를 얻다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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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회 작성일 22-07-06 20:49본문
늪의 내간체를 얻다 / 송재학
너가 인편으로 붓틴 褓子에는 늪의 새녘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믈 우에 누웠던 亢羅 하늘도 한 웅큼, 되새 떼들이 방금 밟고간 발자곡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잇다 수면의 믈거울을 걷어낸 褓子 솝은 흰 낟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더라 바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눈엽처럼 하늘거렸네 褓子와 매듭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머구리밥 사이 너 과두체 內簡을 챙겼지 도근도근 매듭도 안감도 대되 雲紋褓라 몇 점 구름에 마음 적었구나 한 소솜에 遊禽이 적신 믈방울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 만한 고요의 눈씨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褓子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을 늪을 褓子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어름이 너무 차겠지 向念
鵲巢感想文
처음 이 詩를 읽은 때가 아마 10년 전이었지싶다. 권혁웅 詩人의 평론 ‘입술에 묻은 이름’이었을 것이다. 詩를 좀 더 알고 싶어, 시학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 있었던 때라 어쩌면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사실, 위 타자해 놓은 것도 온전한 글씨로 해 놓은 것도 아니다. 시인은 17세기 우리 고어를 살려 문자화했으니 현대 타자기로 옮겨 놓기 사실 버거웠다.
詩의 의미도 파악되기 전에 이미 숨은 멎었고 이거 뭐지 하며 시집을 사는데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클릭했으니까! 무릇 시인이라면 이렇게 매혹적이어야 한다. 독자의 기억에 아주 강인하게 상감해놓고 말았으니,
詩의 내용은 자매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글이다. 아무래도 당시 어느 양반집 규수가 아닐까 하는 정도, 그러나 이 시는 독백이나 다름없다. 시의 세계다. 비유를 보면 늪이 나오고 늪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마치 인간사처럼 구름이 떠간다. 이를 보자기에 싸서 보내는 동생의 마음과 이에 화답하는 언니의 마음이 있다. 그러나 오가는 편지글 형식은 보이나 마음을 적신 문체와 문향 그리고 당시 고어의 쓰임새와 형식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이 詩를 읽어본다. 새녘은 동쪽을 가리키며 발자곡은 옛 언어로 발자취나 발자국이었나 보다. 초록동색은 같은 처지를 말한다. 운문보도 그렇다. 구름의 무늬로 만든 보자기라 참, 입 안 벌어질 수가 없다. 손에 착착 감기는 조어다. 눈씨 눈맵시가 좋을 듯하고 겨을 늪을 보자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어름이 너무 차겠지 어름은 얼음으로 굳은 마음을 대변한다. 겨을도 그렇다. 어른어른 찬 자매의 결연을 본다. 詩의 향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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