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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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22-07-07 22:13본문
젖 / 최금진
퉁퉁 불어터진 고모의 젖을 대접에 받아 늙은 할아버지가 마셨다, 창밖엔 눈이 그쳤고 고기 한 근 제대로 못 먹던 때였으므로 고모는 연신 쌀죽과 미역국을 마셔가며 젖을 퍼올렸다 혀에 암 세포가 꽃 무더기처럼 핀 할아버지는 눈이 그렁그렁한 어린 소처럼 받아먹었다 여자의 젖통을 ‘밀크박스’라고 농담했던 중학교 동창은 영안실에 누워서 흰 젖처럼 흘러가는 잠 속에 제 어린 몸을 흘려보냈다 그의 늙은 어머니는 백혈병 외아들의 입에 물릴 젖이 없었다 흰 피가 젖처럼 솟았다는 신라의 중 이차돈 역시 그의 어머니에겐 다만 철없는 어린애였을 것이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몸 안엔 어린애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밤에 고드름은 유두처럼 처마에 돋았다 할아버지가 끙끙 앓으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삶은 계란 한 판을 혼자 다 드셨다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고모는 비닐봉지 같은 젖이 살에 착 달라붙을 때까지 짰다 성경에 예언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다면 필사적으로 젖을 핥아먹던 할아버지 그 약속의 땅으로 흘러가셨을까 할아버지 혓바닥에 발아하던 암세포들이 먼 산에다까지 눈꽃을 활짝 피워놓았고 오열하는 고모를 붙잡고서 나뭇가지 같은 어린 조카가 빡빡 입맛을 다시며 울었다
얼띤感想文
기와집이라고는 하나 다 쓰러지기 전 초라한 집 한 채였다 집 둘레로 밭이라 봄이며 여름이며 가을과 겨울을 돌려먹었다 밭을 지나면 양송이버섯 공장이 있었고 그 담장엔 그렇게 싫었던 가죽나무 한 그루 있었다 봄이면 이파리가 남아돌지 않았다 장독대라고는 하나 지금 생각하면 장 담을 단지가 몇이었을까 그리 깊지 않은 우물도 있었다 장마 때면 범람하곤 했다 지붕이 없는 변소도 있었고 송아지 한 마리 먹인 적도 있었다 비쩍 말랐다 비쩍 마른 것은 송아지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말라 보였다 가만히 생각하면 동네 당수나무 아래 놀던 기억도 있고 저수지 둘 있었는데 그곳에서 발가벗고 물놀이도 했다 불알이며 고추며 그런 건 하나도 몰랐다 아주 큰 살구나무도 있었어 여태껏 따먹은 살구만 해도 몇이었을까 겨울이면 흰 눈 폭폭 쌓인 산을 누비며 다녔다 이웃집 동생이 있었다 그는 산을 아주 잘 탔다 토끼가 다니는 길목은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덫을 놓는 곳곳 흰 토끼 한 마리씩은 낚았다 어쩌다 나무하러 가면 토끼 하나씩 덤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다 끓여놓은 토끼탕은 왜 그리 맛있었는지, 소고깃국 끓여놓은 것 마냥 구수한 냄새가 났다 별 총총 내려다보는 밤하늘 아래 눈 뜬 흰 토끼가 여럿이었다
최금진 시인의 글을 읽으면 옛 생각이 난다. 물론 시적 글쓰기는 예술이다. 흰색과 시의 알 곡곡 맺는 젖줄의 힘까지 보탠다면 가히 명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마치 어린 조카가 되어 고모의 젖 맛을 입맛 다시며 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보는 것만도 미안해서 한 줄 남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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