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당신 /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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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69회 작성일 22-07-08 22:34본문
하얀 당신 / 허연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올 수 있겠니
죄는 검은데
네 슬픔은 왜 그렇게 하얗지
드물다는 남녘 강설强雪의 밤. 천천히 지나치는 창밖에 네가 서 있다 모든 게 흘러가는데 너는 이탈한 별처럼 서 있다 선명해지는 너를 지우지 못하고 교차로에 섰다 비상등은 부정맥처럼 깜빡이고 시간은 우리가 살아낸 모든 것들을 도적처럼 빼앗아 갔는데 너는 왜 자꾸만 폭설 내리는 창밖에 하얗게 서 있는지 너는 왜 하얗기만 한지
살아서 말해달라고?
이미 늦었지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
제림한 자에게 바쳐졌다는 종탑에 불이 커졌다
피할 수 없는 날들이여
아무 일 없는 새들이여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 20년 걸린다
얼띤感想文
시가 대치를 이룬다. 즉 하얀색과 검은색, 너와 나다. 남녘 강설의 밤과 재림한 자가 의미상 같다. 시 한 수 읽는다고 해서 판각해 놓은 시가 어디 가겠는가마는 또 이를 읽는다고 해서 그 어떤 일이야 벌어질까!
다만, 독자의 마음이 흔들리고 이 시를 뜯는데 오만 감정을 쏟을 게 분명하니 오로지 죄스러운 맘이며 이것은 죄며 독자께는 슬픔만 유발하는 일이겠다.
근데, 시 종연에서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 20년 걸린다’는 아리송한 말 한마디 써붙였다. 하필, 이십 년일까? 전에 허연 시인의 시, ‘오십 미터’를 감상한 적 있다. 한자를 이용한 동음이의어의 특성을 톡톡히 살린 시 쓰기였다.
이번엔 이십 년이다. 왜 이십 년 걸리는 것인가?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 방금 내린 눈은 다 녹았다. 물이 되었다. 증발하고 다시 내린다면 이십 년은 맞는 말인가! 그것은 비가 아니라 강설이겠다.
강설로 강설을 만나는 것이며 더디어 세상은 온 세상은 새하얀 눈 덮인 곳 그 어느 때라도 준비된 마음이겠다.
아! 누구 말마따나 하늘에 포르말린 냄새가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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