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한 마리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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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회 작성일 22-07-11 22:51본문
수탉 한 마리 / 나희덕
독약을 마시고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흰 천을 벗기며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그분께 빚진 것을 꼭 갚도록 하게.*
의술의 신에게 진 빚을 갚아달라는 친구를 향해
크리톤은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소크라테스의 몸이 잠시 떨다가 멈추었고
크리톤은 그의 입술과 두 눈을 고요히 닫아주었다
수탉 한 마리의 빚을 남긴 친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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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피아돈],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2, 234쪽
얼띤感想文
文字를 가지고 노는 民族은 세계 몇 되지 않는다. 아예 文字도 없이 말만 있는 種族도 있다. 이 밤에 무엇으로 재미를 더하며 무엇으로 영혼을 깨뜨릴까! 시조 시인 김상옥은 시조 家庭에서 ‘외로신 어무님은 글안해도 서럽거늘’하며 가정 속에서 고부간의 갈등과 詩人의 처지를 논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의 이 문자 하나만큼은 참으로 창대한 발명품 아닌가! 이것만큼 확실한 詩의 뿌리는 없을 것이다.
詩題가 수탉 한 마리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그의 죽음에 대한 임종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곁에 친구가 있다. 크리톤은 그의 죽음에 대한 화답을 하고 詩의 매개체媒介體로 수탉 한 마리를 끼워 넣었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할 때 실지 수탉 한 마리를 빚진 건지는 여기서는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다. 詩의 맥락脈絡과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가 주안점이다. 하나의 말놀이다.
요즘 시대에 사는 젊은이는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농경문화 속에서는 흔히 느끼는 일 아닌가! 간밤 제일 먼저 일 깨우는 족은 닭들이다. 꼬끼오꼬꼬꼭 거린다. 우리의 정치 문화 속에 유명한 말을 남긴 어느 정치인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내 영혼을 일깨우는 수탉 한 마리 비튼다고 해서 詩가 나올까! 끊임없는 도축만이 칼을 다룰 줄 알며 그 칼을 쥘 줄 알며 그 칼을 갈 줄 아는 것이겠다.
의술의 신에게 진 빚을 갚아달라는 친구를 향해 크리톤은 그리하겠다고 했다. 의술의 신은 여기서 말하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니다. 이 詩를 읽고 뜯는 자는 모두 의술의 신이 된다. 詩를 해체解體하며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은 바로 수탉 한 마리가 몰고 오는 뒷배경의 아침, 그것을 맞이하는 자만이 쓴 자의 영혼의 빚을 탕감할 수 있게 된다. 크리톤은 그의 입술과 두 눈을 고요히 닫아주었다. 입술과 두 눈과 같은 글을 덮었던 것이다. 詩를 한 번 읽었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영혼 오랫동안 발덧을 씻길 이유는 없지만 잠깐이나마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마감시간이 멀었다. 어쩌나 싶다. 시간을 더 죽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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