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 정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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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 정희안
우선 헐거워진 안구부터 조여야겠어 의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네모난 메모는 너무 반듯했어 느슨해진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떨림이잖아 사랑은 사탕 같은 것 길이와 깊이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잠들지 않고 꿈을 꿀 순 없잖아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수순은 잘못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해 일용직 알바생의 심정을 너는 몰라 너는 내가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해 우리 모두 갑질 아래 새로 태어나곤 하지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해버렸어 미움은 미움에서 출발해 머리는 항상 미리를 준비했어 망설임은 사치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처럼, 취업은 걱정 중 제일 으뜸이지 숲이 술을 대신할 순 없잖아 기능도 못 하면서 가능을 얘기했어 조직은 때로 조작도 해 유인하려면 유연해야 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웠어 그러니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밀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절머리와 전갈머리는 무슨 관계인지 거울 속에 겨울이 있잖아 말 많은 세상 발밑을 조심해 그럼, 이제부터 그림 공부나 해볼까
얼띤感想文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늘 그랬듯이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언제 한 번 오거들랑 전화해라, 언제 한 번 맛있는 거 먹자며 얘기하신다. 오늘따라 마음이 움직였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도로가 꽤 맑아 보였다. 나는 아직도 댄스음악을 좋아한다. DJ, Dimitri Vegas & Like Mike의 음악을 틀며 가고 있었다. 이른 시간, 카톡 문자가 뜬다. 동인 한 분이 詩 한 수 올렸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거 같았다. 음악을 들으며 읽으며 가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또 움직였다. 울컥거렸던 것이다. 나는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했을까? 잊어버리려고 해도 잘 잊히지 않는 과오, 비가 오기 전에는 구름이 꽉 끼듯이 코로나 시기의 전후는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지금 생각하면 詩나 읽으며 조용히 지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지나가는 것이었다.
위 詩를 본다. 이 詩를 쓴 詩人의 나이 때가 어떻게 되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詩의 전반적인 내용은 요즘 時代相을 잘 대변한 수작이다. 젊은이의 마음을 잘 드러낸 작품임은 틀림없다. 언어유희적言語遊戱的이며 대조적對照的으로 쓴 詩임에는 분명하다. 가령, 길이와 깊이라든가 달리자는 것과 달라지는 것, 수순과 수준, 정리하다가 정리해버렸다든가 미움에서 머리와 미리, 숲과 술, 기능과 가능, 조직과 조작, 진절머리와 전갈 머리 거울과 겨울, 말과 발밑을 들 수 있겠다.
詩를 읽을 때, 재밌는 건 역시 同音異議語다. 메타포적인 글임에는 분명하기에 詩語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포괄적이다. 안구라는 詩語도 그렇다. 물론 여기서 읽는 건 눈구멍 안에 박힌 눈알이지만, 사실 안구는 말안장에 딸린 기구도 안구鞍具다. 세상을 똑바로 보고자 한다면, 세상 보는 눈부터 키워야 한다. 그러니 의자에 의지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것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임을 말이다.
사랑은 사탕 같은 것, 물론 단맛 같은 연인 사이가 詩 사랑이며 사탕砂湯 즉, 모래찜질 같은 것도 어쩌면 詩에 대한 사랑이다. 한 번 푹 감겼다가 나오면, 마음은 어느덧 다 풀려 버리니까, 詩人은 모래를 참 많이 쓰는 시어 중 하나다. 마치 깨알 같은 글이나 마음을 대변하기 좋기에 흔히 쓰는 재료다. 길이와 깊이에서 약간 뉘앙스를 심었지만, 글의 길이와 그 깊이는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여성의 처지로 보면 귀의 머리가 닿는 건 매 한 가지이기에 사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달리자는 것과 달라지는 것 그 수순은 잘못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하다는, 세상의 틀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이 속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역시 마음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하고 미움이 가득한 현실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지만, 달라질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미래를 좀 더 생각하고 준비해야겠다는 마음, 어쩌면 망설임 그 자체도 사치라는 사실, 現實을 認識하고 깨닫는 것에 마치 귀걸이처럼 어떤 준엄한 성경의 말씀처럼 말이다.
숲은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며 술은 어쩌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알코올이라든가 또 어쩌면 기술이나 잡다한 용병술도 술이기에 제 기능도 못하는데 가능을 얘기한다는 그 암담한 세계를 놓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망에 가까운 곳이지만 그래도 좀 더 유연해야겠다는 마음 가짐이 묻어 있다.
詩도 섬유처럼 날실과 씨실로 엮는 것이지만 詩만 그런 게 아님을 말이다. 詩는 한 편의 世界觀을 좀 더 함축적含蓄的이고 축약적縮約的으로 줄여놓은 또 하나의 거울이자 겨울이며 내 마음을 조명하는 문학이다. 말 많은 세상 아니든가! 발 밑을 조심하라는 詩人의 격조된 이 한 마디, 딛는다고 그 모두가 제대로 된 걸음일까 말이다. 그것이 진짜 땅에 박혀 있는 돌인지 아니면 허상처럼 떠 있는 스티로폼의 세계인지 분간할 줄 알아야겠다.
그러므로 세계는 RUNNING BY DOING이다.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도 뛰어가야 한다는 사실, 여기서 내가 가젤인지 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해가 떠오르면 달리자와 달라지는 그 수순이 아니라 생존은 숲의 무대며 사각지대를 읽어내야 할 술의 취득과 삶과 죽음의 그 미묘한 진절머리 나는 세상이지만 정말이지 전갈 머리처럼 독을 품고 바라봐야 할 세계임을 詩人은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발 밑을 조심하라, 아주 단호하다. 단호하게 듣기는 것이다.
시제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는 십자(十)는 거리를 말하며 갈팡질팡 망설임의 世界를 대변한다. 드라이버, 운전자로서 필요한 오후(吾後)다. 현실의 나를 깨치고 현실 이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스스로에게 던진 격언 같은 말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말이다.
십자에 대해 좀 더 언급하자면, 익히 김소월도 쓴 바가 있다. 시 왕십리에서 ‘가도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오, 그렇다 우리는 늘 왕십리였다. 그렇다고 자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다시 독을 품자. 세상 똑바로 볼 수 있는 그 독 말이다.
잘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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