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가장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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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회 작성일 22-07-12 13:40본문
소년 가장 / 최금진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데 죽은 아버지 부르는 소리
얘야, 오늘은 마을에 제사가 있구나
목구멍이 빨대 같은 풀들이
피 묻은 꽃들을 혓바닥처럼 밖으로 꺼내어놓을 때
빠드득 빠드득 이빨 갈며 풀벌레가 울고
소년의 굽은 어깨 위로 뛰어내리는 나무그림자
귀를 틀어막아도 따라오는
얘야, 아비랑 가서 실컷 먹고 오자
어둠이 허방다리를 놓아주는 늦은 귀갓길에
배고플까봐, 배곯고 다닐까봐, 소년을 올라타는 소리
아비랑 가자, 아비랑 함께 가자
얼띤感想文
점심은 국수를 먹었다. 선풍기 바람이 선선하다. 오늘은 22년 7월 12일이다. 올해도 벌써 6개월은 지났다는 얘기다. 담당 세무서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가세 신고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후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마을에 제사가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마을에 누가 죽었으니 예를 표하라는 단호한 말씀이다. 詩의 世界에서는 죽음과 탄생은 얼추 비슷하게 들린다. 世界를 마을로 축소縮小한 것도 재밌는 발상發想이며 言語의 進化論的 說明으로 아버지와 밤길을 대치해놓은 것도 꽤 괜찮은 착상이다.
목구멍이 빨대 같은 풀들이 피 묻은 꽃들을 혓바닥처럼 밖으로 꺼내어놓을 때 빠드득빠드득 이빨 갈며 풀벌레가 운다. 이는 아버지의 殘像, 잔영殘影이다. 목구멍과 빨대 같은 풀들은 동격이다. 빠드득빠드득 이빨 갈며 풀벌레가 우는 이유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잃었기 때문이다. 이는 피 묻은 꽃들을 혓바닥처럼 밖으로 꺼내놓을 때 일이다.
한 편의 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읽지 않으면 무엇을 그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소년의 굽은 어깨 위로 뛰어내리는 나무 그림자 그러니까 이미 굳은 소재 거리는 배척해야 할 일이건만 어찌 귀를 틀어막아도 따라오는 일이다.
얘야 아비랑 가서 실컷 먹고 오자는 얘기는 반어적으로 들린다. 사실, 그 옛날 고죽국孤竹國의 아들 백이와 숙제를 보는 것도 하지만, 고사리만 먹는다고 해서 알아주는 세상도 아니건만, 골고루 먹 돼 새로움을 創造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 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본다.
어둠이 허방다리를 놓아주는 늦은 귀갓길에 배고플까 봐, 배곯고 다닐까 봐, 소년을 올라타는 소리 아비랑 가자, 아비랑 함께 가자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소년 가장이다. 시는 아비랑 같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것으로 느낌을 받지만, 한 편의 詩가 배곯지 않게 우리의 영혼을 일깨운다면 그러니까 그 허방다리를 메울 수 있다면 소년이여 책과 더불어 가자,
그러면 소년은 아비를 부를 수 있으며 아비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 된다.
아! 詩 참 어렵다. 제삿밥은 누가 더 필요한가? 제사는 왜 하는 것이며, 귀를 틀어막아도 따라오는 애비의 목소리, 어둠이 허방다리를 놓아주는 늦은 귀갓길이었다. 가령, 빠질 수 있는 저 구덩이에 지나쳐 가도 될 일을 구태여 빠졌다면, 미리 알았더라면 그러니까, 배는 영혼이다. 영혼은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말이다.
여기서 갑자기 나만 믿어도 그것도 宗敎라는 어느 선생의 말씀이 들린다. 허령불매虛靈不昧라는 문자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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