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발작 /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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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22-07-12 22:09본문
둥근 발작 /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기 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일교차가 당도를 결정한다면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얼띤感想文
원래 이 詩는 행가름이 되어 있다. 이렇게 붙여 놓은 이유는 詩人께 예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詩人의 詩集 둥근 발작에 나오는 수작 시제 둥근 발작이다. 詩를 읽는 것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것을 글로 옮겨놓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詩를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떻게 쓴 詩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 그 생명력까지 이 詩는 말해 준다. 가히 名作이 아닐 수 없다.
이 詩를 뜯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마치 칼을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저것이 양의 얼굴로 내보였다면 나는 음의 얼굴로 내보이는 것이 맞겠다 싶어 그냥 글로 옮겨본다. 다 옮겨놓고 부연설명을 할까 한다.
-시초를 쓰기 전에 메모지와 습작으로 분위기를 잡으세요 흰 종이 위 낙서와 시초의 두 갈래 안에서 신경질적인 어떤 詩가 맺을 겁니다 글을 읽고 딴생각이 났다면 얼른 메모지에 옮겨놓으시고 일기에 가깝기 전에 詩論을 읽으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묵혀 두는 일입니다 독자의 눈높이 이상은 써지 마세요 시를 닮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니까 시에 가깝게 써보세요 굳음에서 부드럽게 나아가도록 노력하세요 된다 된다 된다 긍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시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자 하자 하자 마음을 열고 자꾸 쓰시면 종이가 잿빛으로 바뀔 겁니다 시에 대한 극심한 인식이 시의 맛을 결정하며 시에 대한 극심한 감정 교류는 시의 빛깔을 결정합니다 짜증 나는 더위에 고전적인 성향을 비가 오는 날에는 낭만적인 성향을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으로 깊어지면 쓰레기입니다 나른하고 출중하고 종이만 만졌다가 가거나 한 번에 읽어버리는 시는 시의 품질을 저하시킵니다 위로 뻗는 생각이 있다면 싹둑싹둑 얼른 습작하시고 그것이 시가 될 수 있도록 메모에 미쳐보세요 낙서와 시초의 두 갈래 안에서 둥글둥글한 감정을 끌어 내보시죠.-
물론 잘 번역해 놓은 건 아니겠다. 글로 표현한 것보다 그 뒤에 묻어오는 배경은 훨씬 더 크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詩人은 詩로서 詩論을 얘기한 것이며 詩의 根源과 發展 그리고 그 열매까지 논한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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