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풍경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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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22-07-14 09:21본문
안개 속 풍경 / 정끝별
깜깜한 식솔들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진 이 안개를 어떻게 건너셨어요?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 굴젓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부품 개의 혀들이 소리 없이 컹컹거려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발 앞을 위태로이 달려가는 두 살배기는 무섭니? 하면 아니 안 무서워요 하는데요 아버지 난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람 속에서는 바다와 별과 나무, 당신의 냄새가 묻어 와요 이 안개 너머에는 당신 등허리처럼 넓은 등나무 한 그루 들보처럼 서 있는 거지요? 깜박깜박 젖은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덧 안개와 한 몸 되어 백내장이 된 우우 당신의 따뜻한 눈이 보여요 덜커덩 덜컹 화물열차가 지나가요 그곳엔 당신의 등꽃 푸르게 피어 있는 거지요? 나무가 있으니 길도 있는 거지요? 무섭니? 물어주시면 아니 안 무서워요! 큰 소리로 대답할게요 이 안개 속엔 아직 이름도 모른 채 심어논 내 어린나무 한 그루가 짠하게 자라는걸요! 나무는 언제나 나무인걸요!
얼띤感想文
출근 중이었다. 동인 한 분 詩를 올린다. ‘타임슬립 기법인듯 한데 별로 감동이 안 오네요 신춘문예 심사도 하는 분인데 이해를 잘못하는 건지 어떠세요?’ ‘ ㅎㅎ 좋은데요, 지금 출근 준비 차에 오름, ㅎㅎ, 보고 시간 나면 회사 다녀와서 감상문 한 번 써보께요’
詩야 詩인데 좋고 나쁘고 할 게 있는가 싶다. 나무, 그 나무 말하자면, 한 그루가 짠하게 자라는 걸 지켜보는 詩人, 그래 당신의 詩는 어딘가 돌고 있고 그곳은 이미 등꽃 푸르게 피어 있다는 사실, 무섭니 하고 물으면 아니 안 무서워요. 큰 소리로 대답할 수 있는 詩人 안갯속이지만 안갯속 같은 세상이지만 결코 이름도 없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우리, 이 속에 작은 나무 한 그릇 있듯 우리는 세상을 똑바로 보고 서 있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詩語를 잠시 들여다본다. 식솔, 안개, 굴젓, 개, 혀, 두 살배기, 아버지, 바람, 별과 나무, 등허리, 등나무, 들보, 백내장, 화물열차, 등꽃, 큰 소리, 어린나무, 짠하게,
예전 우리의 아버지는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어깨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의 느낌을 받는 건 무릇 詩人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떠나고 없는 세상, 우리는 여전히 두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世上을 바라보고 서 있다. 험난險難한 世上 아닌가! 점점 백내장 같은 안갯속 흐린 장래를 우리는 걷고 있음을 말이다.
화물열차貨物列車 같은 줄줄이 달아맨 책임과 의무만 있을 뿐이며 휜 등뼈에서 등꽃이 피어날 정도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時代인 것을 말이다. 아! 詩語 하나가 눈에 꽂힌다. 굴젓 말이다. 굴+젓 아닌가 이 世上은 암울한 굴 같은 곳 그것도 마냥 뚫린 世界觀이 아니라 탁 막은 앞 어찌 보면 出口가 어딘지도 모를 그 막막함 속에서 흙을 퍼올려야 하는 詩人의 責務 그 책무는 바로 우리들의 삶의 哲學인 것을 말이다.
그 굴 같은 세상 젓내가 풍기는 땀의 노동을 우리는 사는 한, 끝까지 그 화물열차를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 그래 세상 무섭니? 아니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렇게 대답할게요. 그렇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두 살 배기처럼 아장아장 걸어야 하지만, 현실을 직시直視하고 똑바로 두 눈 뜨고 가야 한다는 사실, 아! 어렵다. 이 어려운 세상 어찌 살란 말인가! 하소연도 필요 없는
마! 입 닥치고 걸어라 걸어가라, 뭐 이렇게 듣기는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오 과연 그 왕십리를 오늘에서야 건널 순 있는 것인가! 아득하다. 아득하지만 걸어가야 한다는 등꽃 푸르게 오지게, 오지게 피어 올려야 한다는 그 책임과 의무라는 두 기둥을 야무지게 받혀야 하는 들보처럼
오늘도 꿋꿋하게 서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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