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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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8회 작성일 22-07-16 08:02본문
갈대 / 송재학
일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금호길, 갈대 서걱거리는 금호(琴湖)라는 의성어를 날것으로 들었던 그때 새 신발이 아니라도 십 리 길은 멀고 높았다 외가에서 큰집까지 지금도 그 길의 되돌이음표를 새기면 몸의 뒤축은 아프다, 아프다 못해 잘린 팔의 허공이 가렵듯 아버지에게 매달렸던 수많은 내 오른손은 이제 잡아야 할 아버지 없어 연신 가렵고 아프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불러보는, 기계충처럼 솎인 갈대가 외치는 짐승의 음성이 여리고 목 쉰 것도 그 때문이다
얼띤感想文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내가 만 49세 때 세상을 달리하셨다. 재작년 늦가을이었다. 둘째 동생이 죽음을 알렸다. 지금도 아버지 임종을 함께 못한 슬픔이 가슴에 남아 있다. 당시는 모르고 지나갔으나 歲月이 더할수록 가슴이 아린다. 世上은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하고 아프고 또 가련한 곳인가! 피붙이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모두 아픈 것이다.
송재학 詩人의 ‘갈대’를 읽었다. 詩人이 詩를 제공하였다면, 讀者는 바르게 읽을 의무가 있다. 그릇된 평으로 글을 올려놓는다는 건 詩人께 무례를 범하는 거라 나는 생각한다.
詩 서두 부문은 詩人의 소싯적 생각의 한 자락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은 다 갖고 있다. 내가 산 동네에도 승용차를 갖고 있었던 주민은 한 주택뿐이었다. 예비군 군대장이라고 했던가! 하여튼, 군인이었다. 그 외는 차가 없었던 시절, 물론 소싯적 얘기와 더불어
다시 詩의 세계로 넘어오면 여기서 주안점主眼點은 되돌이 음표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반향反響이다. 반향을 느끼며 속 아파하는 詩人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잘린 팔의 허공이 가렵듯 피붙이와 같은 詩를 발표하고 그 뒤에 오는 느낌은 잘린 팔의 고통과 마찬가지다. 이제 교과서와 같은 아버지의 詩를 읽을 나이는 지났지만,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은
기계충이라는 말은 컴퓨터에서 발견된 여러 기자와 그 외, 또 다른 존재의 얘기가 그렇듯 그 갈대, 갈대처럼 그냥 허우적거리는 그들의 말은 여리기만 하고 잘 다듬지 않은 목소리임에는 분명하다. 詩人은 이렇게 말한다. 뭐 좀 알고 지껄였으면 좋겠당~ 뭐 이런 말이다.
잘 감상感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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