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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오래전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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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2-07-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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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 이영주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병상 일기만 적고 있다. 아프지 않을 때는 더욱 깊게 적었다. 불타는 창문 아래서 너는 내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써주었는데 그런 말은 즐겁고 발랄한 필체여서 나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붉은 옷을 입고 몸에 그려진 땡땡이를 파내고 있는 네가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형태는 사라졌고 재가 떨어졌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거니. 가끔 일기에 적어야 할 말을 소리 내어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유에 흠뻑 젖어 하얀 피를 흘렸다. 모두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너는 붉은색 위에 붉은색을 겹쳐 입은 홍당무.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문 닫힌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지. 서로를 바라보며 수프를 떠먹고 당근을 씹었지. 무겁고 지루하고 그저 그런 말들이 떠다니는 이 도시가 좋아서 너는 사랑에 빠졌다. 휠체어를 끌고 다닐 때까지 우리는 이 병든 도시에서 만나야 해. 나는 내 일기의 끝을 미리 적고 있었다. 작고 날카로운 칼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잠든 그녀를 너는 자꾸만 떠올렸다.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장식용 무기들을 사랑하는 그녀를 너는 병든 천사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 천사에 대한 꿈을 꾸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너는 링거를 꽂고 울었다. 땡땡이 무늬가 조금씩 떨어지고 머리에 매달린 푸른 잎이 창문 밖에서 흔들렸다. 불타는 이 도시에서 푸른 잎사귀가 떨어지다니. 나는 외국인들이구나 생각했다. 꿈같은 건 적어서는 안 된다. 나는 우유를 질질 흘렸다. 길고 가느다란 천사의 혀가 바닥을 핥고 있었다. 너는 혀를 사랑하고 부서지는 손가락으로 내 병상 일기를 대신 적고 있었다.

 

웹진 비유201811월호

 

   얼띤感想文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얼띤感想文만 적고 있다. 일이 없을 때는 더욱 시집만 펼쳤다. 교통이 혼잡한 기획사에서 밀려드는 논문 편집을 하고 복사를 하며 시간을 기워가며 오로지 너의 집만을 기웃거렸다. 회색빛 쫄티를 입고 옛 추억이 피어나는 이 골목 시간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구성은 막무가내였고 토너 가루만 날린다. 너는 지금 눈 흘기며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지, 이 사람들 빨리해요. 겁을 주면 일을 한다니까 손님도 그리 알고 계셔야지, 그럴 때마다 나는 커피 한 모금 빨며 젖은 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요거는 갖고 가시고 하여튼, 빨리하겠습니다. 너는 분홍색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지, 점심은 파프리카, 사과 한 입이었고 브라운 조지와 절인 고기 조금 그리고 맥주를 마셨어, 요즘 유행한다는 코카인 댄스를 틀어주었잖아. 신났고 웃었고 차에 올라서 이렇게 많은 펭귄의 발바닥과 그 흔적을 더듬으며 마치 자갈밭 같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해 저무는 저녁을 생각해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전단 백 만원 치 찍는다잖아, 소책자 삼백만 원치 하고 너거 부인도 그렇잖아 배운 기술이 아까워서 일하고 있다잖아. 견장은 자꾸 문자 오고 오늘 마지노선입니다. 마지노선이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독일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 요새 선을 의미하며, 더 허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진다는 의미지요. 전쟁에서 민간인까지 결딴나는 겁니다. 그렇다, 어디서 무엇으로 춤을 춘다는 말인가! 다만 손가락에 손가락을 끊고 손가락을 질질 끌며 병상일지를 적으며 병상을 잊기 위해 치료하는 그 하루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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