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 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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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 신철규
한참을 울고 체중계에 올라가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면 대지는 오래전에 가라앉았겠지 / 꿈속에서 많이 운 날은 날이 밝아도 눈이 떠지지 않습니다 눈 속에 눈동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마음에 부목을 대고 굳은 무릎으로 여기에 왔다 목소리 위에 목소리가 쌓인다 우리는 각자의 목에 돌을 하나씩 매달고 목소리의 탑을 쌓는다 /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계방에 걸린 수많은 시계들이 한꺼번에 울린다 우리가 한꺼번에 울면 해수면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 우리의 목소리는 쌓이면서 아래로 가라앉는다 우리의 탑은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지하를 향해 깊어지는 것이었다 / 젖은 영혼들이 물의 계단을 밟고 걸어 올라온다 어두운 나선의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일렁이는 촛불의 빛무리 귓속에 검은 물이 들어차고 우리는 목소리의 동굴이 되어간다 / 망원경으로 적국의 시가지가 폭격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시민들 그들에게 시온은 얼마나 튼튼한 요새인가 우리의 심장은 파쇄기에 갈아버린 공문서처럼 조각난다 부서진 빛들이 노래가 되고 부서진 울음들이 물비늘이 된다 / 우리는 목에 더 무거워진 돌을 매달고 흩어진다 다른 말과 다른 낱말을 가지고 다시 여기에 모이기 위해
얼띤感想文
詩人은 아마, 바벨을 보며 바벨탑을 생각한 것 같다. 바벨의 무게와 神이 내린 저주 바벨탑 建設은 이로 바벨이라는 詩로 탄생誕生한 것이다. 그러면, 詩와 더불어 文章을 보자.
한참을 울고 체중계에 올라가도 몸무게는 그대로다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면 대지는 오래전에 가라앉았겠지, 詩의 무게와 인간의 무게를 대칭적對稱的으로 놓으며 詩를 묘사描寫한다.
꿈속에서 많이 운 날은 날이 밝아도 눈이 떠지지 않습니다. 詩의 인식認識 부족不足이다. 詩集을 본다고 폈지만, 눈은 시력詩歷을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詩人이 써놓은 文章은 마냥 꿈속 길이다. 눈 속에 눈동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눈빛만 보아도 저게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까막눈인지 분간이 되겠지.
우리는 마음에 부목을 대고 굳은 무릎으로 여기에 왔다. 하! 여기서 참 괜찮은 표현을 본다. 마음에 부목을 대다. 마음의 부목은 곧 詩를 제유提喩한 문구文句가 된다. 무릎의 표현表現이라는 말도 詩人이 흔히 쓰는 詩語다. 굽히고 펴는 또 굽힐 수 있고 뭔가 이전적 요소와 건네는 작용까지 무릎 하나로 다 소화消化한다.
목소리 위에 목소리가 쌓인다. 앞의 목소리는 시측 대변이자 뒤의 목소리는 독자讀者의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목에 돌을 하나씩 매달고 목소리의 탑을 쌓는다. 시측은 인식認識의 돌을 독자는 부재不在의 돌을 달고 읽는다. 그 돌을 빨리 벗어던지고 싶은 욕망欲望으로 시간의 탑을 쌓는다.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계방에 걸린 수많은 시계들이 한꺼번에 울린다. 독자는 하나 둘이 아니겠다. 시계방은 詩를 제유하며 수많은 시계는 讀者를 提喩한 文句다. 우리가 한꺼번에 울면 해수면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詩를 보는 안목眼目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는 쌓이면서 아래로 가라앉는다-詩 認識의 結果는 몽당연필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탑은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지하를 향해 깊어지는 것이었다-詩的 묘사描寫다. 바벨탑을 언급하는 것이지만, 시적 바벨탑은 지하 즉 지면에서 출발하므로 그 깊이는 또 있어야 해서 한 줄 글귀를 남길 것이다.
젖은 영혼들이 물의 계단을 밟고 걸어 올라온다-詩를 이해하고 世上의 사정을 안다면 계단을 발 듯 그 단계를 거쳐 조금씩 筆力은 나아질 것이다. 어두운 나선의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일렁이는 촛불의 빛무리 귓속에 검은 물이 들어차고 우리는 목소리의 동굴이 되어간다-참! 詩人의 詩에 대한 描寫는 여기서도 한 끗 빛을 발한다. 계단을 그냥 두지 않았다. 나선형으로 빌빌 꼬면서 또한 검은 물도 그렇다. 일렁이는 촛불의 빛무리 귓속에 검은 물이다. 한 번 더 꼬며 진행한다. 대단한 筆力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는 목소리의 동굴이다.
망원경으로 적국의 시가지가 폭격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시민들 그들에게 시온은 얼마나 튼튼한 요새인가-詩의 낯설기가 여기서 한 장면場面을 찍는다. 물론 바벨탑에 대한 근거根據 구약성서에 대한 어떤 진리 한 자락을 놓이게 하므로 詩는 어떤 완벽完璧한 世界에 돌입突入한다. 여기서는 詩의 해체解體와 그에 대한 文章의 완벽성完璧性을 論하고 있다.
우리의 심장은 파쇄기에 갈아버린 공문서처럼 조각난다 부서진 빛들이 노래가 되고 부서진 울음들이 물비늘이 된다-詩 解體를 描寫한다. 하나의 詩가 解體된다는 것은 곧 誕生의 밑거름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우리는 목에 더 무거워진 돌을 매달고 흩어진다 다른 말과 다른 낱말을 가지고 다시 여기에 모이기 위해-그 어떤 言語도 여기에 모인다. 詩의 世界로 말이다.
詩를 읽다 보면, 어쩌면 詩人이 아니라도 詩를 盲信하는 宗敎人처럼 되어 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므로 詩集이 어쩌면 성서처럼 말이다. 성서만이 깊은 宗敎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겠지. 詩人이 잠시 들여다보는 詩集 속에서도 靈魂은 흘러 그 靈魂과 交流를 하다 보면 안정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 나가 마음의 가책呵責 또한 느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詩 잘 感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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