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코트 /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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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2-08-11 11:14본문
빈 코트
=유희경
나의 벽에는 코트가 하나 걸려 있다 나는 저 코트의 주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내게 단추를 하나 채우도록 만들지만 침묵하는 나의 빈 코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겨울을 건너온 것일까 몇 번의 밤 몇 개의 느린 눈송이 차마 내려오지 못하던 그 겨울들의 이력 몇 장의 백지 몇 가닥의 마른 손끝 검은 나무들이 날린 잎사귀들의 두려움 기억한다 우리를 비틀거리게 하던 그림자 그림자의 사이 지나쳐버린 속도 배웅해야 했던 웃거나 웃지 못하고 떨어뜨린 딱딱한 이름들 잊지 않을 것이다 한쪽 주머니에서 찾아낸 식은 글자들 꺼내 읽어보려 했던 입술의 창백한 모양 그저 음악 같던 추위와 추위의 하얀 뼈 마침내 하나가 남고 남은 것 떠나려 할 때 어디에 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는 벽에 걸린 채 비어 있는 나의 코트 채운 단추를 풀어보려던 작은 힘을 나는 놓쳐버린다 그리고 느린 눈은 아직도 떨어지고 있구나 일생을 다한 속도로 그것들은 공중에 남을 것이다 각오를 숨긴 사람들 지나간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벽과 같은 것을 세운 적이 없으므로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은 나의 빈 코트
얼띤感想文
지천명을 걷는 한 존재다. 내가 걸 수 없는 벽에 나는 몇 개의 코트를 걸려고 했던가! 한 세대를 두고 양쪽 세대에 양쪽 양말에 의해 나는 또 얼마나 휘둘리며 살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또 얼마나 다독이며 살았던가! 이 시를 읽으니 그런 생각이 지나간다. 지천명의 감정 용량은 너무 지나쳤거나 너무 작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저 어머니, 어머니의 간절한 입을 늘 무심코 듣는 아들이었다. 종일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뭘 그리 말씀이 많으신지 종일 중얼거리시는 어머님, 그저 자식이 바라는 대로 따라주시면 또 얼마나 좋은가! 죽음을 맞지 못해 이 지겨운 세상을 빨리 저버리지 못해 도로 안달이신 어머니였다. 내가 걸 수 없는 벽이었다.
빈 재킷이 옷걸이에서 출렁거린다. 이 여름날 선풍기 바람에, 너울거린다. 저것은 또 어디론가 출정하라며 손짓과 눈짓이다. 그러면 또 일기가 나올 것이다. 시가 나올 것이다. 삶은 어쩌면 돌고도는 일, 어느 것이 먼저 죽든 돌려야 하는 이 몸뚱어리다. 푹푹 찌는 여름 오후 2시 모 총무님을 만나기로 했다. 화재보험을 건네고 사인을 받아야 하고, 기획사는 조금 늦게 가야 할 듯하다. 어제 넣은 보험은 기각되었다.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침 출근, 내부자가 한 마디 건넨다. 아득하다. 어디서 무엇으로 또 이달 맞춰 가야 하나! 모 선생의 그린 그림 한 장이 이쪽을 바라고 웃고 있다. 웃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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