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도 사정도 없이 /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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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2-08-13 20:01본문
인정도 사정도 없이
=이현승
누가 나를 좀 때려주었으면 좋겠다. 누가 여기서 좀 꺼내주었으면 싶다.
아무리 재난이 이웃사촌 회갑처럼 잦은 조국이지만 나 치매 걸리면 조용히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배우자처럼 죄송의 말이 재앙보다 더 잔인하게 들린다.
끔찍한 악몽을 꾸는 사람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빨래처럼 쥐가 나고 몸이 꼬이듯 맞은 뺨을 어루만지면서 우리가 깨어날 때 결국 불안을 일깨우는 것도 안도이다.
왜 나빴던 기억은 영원한 걸까. 우리는 언제라도 극복 가능하지만 거기서 영원히 나갈 수는 없다. 터널과 터널 사이 구간의 운전자처럼 백일에 눈이 아프다.
겉은 젖고 속은 타들어가는 이곳에서 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다. 차라리 누가 나를 좀 때려주었으면 좋겠다. 누가 용서라는 말을 없애버리면 좋겠다.
얼띤感想文
이 詩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역시 ‘용서’다. 용서容恕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주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이 뜻이 아니다.
용서傭書는 남에게 고용되어 글씨를 써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의 어떤 속성 하나를 살린 셈이다. 다시 말하면 마중물의 역할 같은 것인데 시를 읽지 않으면 시가 잘 나올 순 없듯이, 그 용서 그렇지만 시의 내용은 반어적으로 용서容恕에 관한 속성으로 글을 짓는다.
누가 나를 좀 때려주었으면 좋겠고 누가 여기서 좀 꺼내 주었으면 싶은, 그런 용서가 없는 일
회갑盔甲이란 시어도 육십갑자의 그 갑이 아니라 투구와 갑옷을 아우르는 시어임을 미리 짐작해야겠다. 터널과 터널 사이 구간의 운전자처럼 백일에 눈이 아프다. 겉은 젖고 속은 타들어 가는 이곳에서 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다. 아! 멋진 문장이다.
용서라는 하나의 시어를 일깨운 좋은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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