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불꽃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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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불꽃
=조연호
부지깽이 끝에 매캐한 연기가 걸려 올라온다. 겨우 입 벌린 메꽃 한 송이가 되어 엄마 곁엔 순산한 셋째 계집애가 누워 있었다. 손가락 다섯, 발가락 다섯, 생식기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 엄마가 편히 눈을 붙였고, 누룩곰팡이가 아랫목을 따라 끊임없이 기어다녔다. 달그락거리는 배고픔들이 따뜻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밤새 꿈 앞을 서성대고 있었다. 강이 빈한한 날을 지난다. 부지깽이를 쥔 엄마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불꽃나무가 자란다. 뿌리며 가지며 아궁이 속을 확확 드나들고도 나무는 아직 차갑다. 누이가 몰래 자작시를 보여준다. 그 시구에 내가 유치한 눈물 훔치다가, 세 번째도 딸, 아빠가 뒤집어 엎은 상을 훔치다가, 이 저녁은 느닷없는 평화 속에 끝난다. 강이 투명하고 가벼운 수의를 입고 강 건너 찬안댁 할머니를 부르러 간다. 미역줄거리가 끓고, 부지깽이를 저으면 화르륵, 엄마들이 일어서다간 도로 누웠다.
얼띤感想文
시제 ‘얼음불꽃’은 시의 고체성을 살린 수작이겠다. 나는 부지깽이 같은 연필로 저 시를 뜯으며 잔영을 끌어올린다. 겨우 두 다리 짝 벌려 펼친 너 메꽃 한 송이의 시 이를 읽는 마음은 벌써 셋째 시를 낚았다. 문장 곳곳 어디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며 들여다본 일은 꼼꼼하고 정이 간다. 마치 누룩곰팡이 퍼지듯 밑은 따뜻하고 발효의 그 열정이 오르니 밤을 내모는 이 엄마의 마음은 다만 꿈 앞에서 설렘이고 또 어쩌면 그간 굶주린 손맛에 야망이 잠시 일었다. 아직 정식 출간한 작품이 아니니 여전히 차갑고 시초에 불과함을, 며칠 전 썼던 시(누이)를 잠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 시에서 시구 하나가 또 끌어다 쓰려다가 유치한 생각이 들어 접었다. 세 번째도 같은 성질의 시라니, 시인으로서 상만 자꾸 구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 저녁 잠시 안정을 취하고 다 쓴 원고를 들고 저 길 건너 천안에 사는 시인께도 보여야겠다. 미역 줄거리 같은 이 시, 연필로 휘휘 저으면 호로호로 오를 저 시를 누가 읽어도 무엇 하나 끄집어낼 듯한 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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