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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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22-08-21 23:12본문
희 / 조유리
희가 죽었다
죽은 희가 부르는 노래에
삼켜진 내 목소리를 만지며, 사십구 년째
오늘은 희가 태어난 날
춥고 아픈 배를 갈라 희를 죽이고 다시 희를 낳은 날
세상의 모든 희가
오늘 태어나고 어제 죽었다
흰 삼베를 걸친 희가
검은 배냇저고리를 갈아입은 희가
전신거울을 들여다보면 하반신 아래 헝클어진 뼈들로 희가 서 있다
다시 들여다보면 달에서 처방받은 약병들로 쟁여진 희가
생의 반나절을 이쪽과 저쪽에 세워 두고
왼쪽 젖가슴을 도려내야 한다니 양 가슴 다 들어내 주세요,
검은 그을음 속에서 얼굴을 뒤지고 있는 태반까지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희는 털모자를 짰고
나는 유일한 긴 생머리를 간직한 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살다 떠난 모든 희가
헛몸이 되어
되살아나고 있다
얼기설기 맞추기
희가 죽고 오늘 다시 희가 태어나고 마치 윤회처럼 오고 가는 “희”라는 이름은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여인들, 힘없이 젖가슴을 도려내는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어정쩡 살고 있는 모든 여인들의 통칭으로 “희”라는 특정의 이름을 부른 것 같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짚신을 만들어 주었다는 먼 시간 속 여인으로부터 오늘을 사는 “나“라는 여자까지 관습과 통념에 자유롭지 못한 세상의 한 귀퉁이를 살면서. 아직도 여자가 나서면 죄가 되고 흠이 되는 희의 세상을 살면서 나는 내 이름을 세차게 붙들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세상에 대한 반발심만 키우고 사는 것 같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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