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과거 =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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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과거
=박세랑
짓밟힌 잔디처럼 누워 있던 목소리가 이곳저곳으로 번져가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끝내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들 여름의 잡초처럼 녹색으로 물들던 상처들이 점점 번져가도 파도가 된다 덮쳐오는 슬픔과 밀려드는 과거 사이에서 파도는 한 자락씩 푸른 늑대가 되어 밤하늘을 날아다닌다* 홀로 서 있던 빨간 등대가 늑대들에게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면 우거진 여름 안으로 구불구불 날아드는 늑대들 숨기면 숨길수록 더 또렷해지는 불안이 보름달처럼 높이 떠오르고 우울이 거대한 혹동고래를 타고 천천히 떠 내려온다 계속해서 덮쳐오는 해일과 파도 속에서 이야기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네 숨겨오던 불온한 상처들에 대해서 한 번쯤은 온전히 이해받고 싶었지 잠잠히 듣고 있던 당신의 동공 속에서 슬픔이 망각의 비로 흘러내린다 잔디와 파도와 늑대가 혹동고래를 타고 천천히 떠내려간다
*미로코 마치고의 그림책 ‘늑대가 나는 날’(유문조 옮긴, 한림출판사 2014) 제목에서
얼띤感想文
답답하다 무엇이 이리도 답답하게 한 것인가 감금된 것처럼 세상은 온전한데 나만 아프다 수북이 쌓아 놓은 빈 깡통과 우수 통 그 옆에 쉬지 않고 반복하는 선풍기 닥쳐올 겨울이 아니라도 마냥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저 자외선 온풍기까지 그러나,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이 좁은 사무실에서 나는 발 디딜 곳이 없다. 아주 작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컴퓨터 한 대다. 벌레는 내가 키우는 것들이며 간혹 배고플 땐 한 마리씩 잡아먹기도 한다. 잡아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재생산하는 벌레는 멸종될 기미가 없다. 어디서 출현하는지 뒤돌아서면 하나씩 낳았고 어디든 다녀오기만 하면 바닥은 기며 울며 바라보고 있다. 그러는 저 벌레가 안타깝다가도 해서 핀셋으로 무작정 하나 집는다. 나는 벌레에 대한 공포를 잊으려 애써 본다. 왜냐하면 나의 먹이로 어둠의 허기를 지우기 위한 배고픔을 달래며 하루 걸을 수 있는 원기를 주기 때문이다. 무작정 집은 벌레 하나가 꿈틀거린다. 마치 혹동고래처럼, 벌써 내 작은 우주 속 출렁거리는 바닷물이 이쪽으로 철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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