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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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2-08-22 20:03본문
처음의 맛
임경섭
해가 지는 곳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가 움직이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형이 슬퍼한 밤이었다
김치는 써는 소리마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형이 말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
창문이 있는 곳에서
어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
이미 구름이 한창이었다
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
모두가 돌아오진 않았다
얼기설기 맞추기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않는 세상이다. 가끔 거꾸로 생각하고 뒤로 걸어야 바르게 살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구역에 서 있는 느낌이다.
시인은 당연히 서쪽으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을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 십 년은 먹었을 법한 엄마의 김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말하며 그 맛 조차 구별할 수 없는 더 깊이 애매모호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둠 속에도 밝은 것은 밝아야 하는 세상에 달조차 구름에 가려진 시간에 돌아 올 수 없는 그 무엇은 대체 어떤 것일까?
끝까지 돌아오지 못한 건 정의로운, 깨끗한, 순결한 목숨들 아닐까 하는 생각.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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