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흠향하고 /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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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22-08-27 10:03본문
초록을 흠향하고
이소연
다들 집 밖으로 나가지 말자고 하였으나
문 없는 집은 없어서
나의 집이 먼저 나를 이끌고 외출하였다
집은 송장나무*를 찾아가 송장같이 지내는 법을 묻는다
꽃잎은 왜 아래만 바라보는 걸까?
개미는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갈까?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서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긴 사람처럼 좋았다
굽 높은 신에도 바짓단이 젖고
얼굴을 들면 세상이 물에 잠겼다
약(藥)이 된다는 말을 좋아했다
서로의 반대쪽 손등을 부딪히며 걷는 일은
나도 아는 걸 너도 안다는 뜻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숨이 차올랐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죽은 노루를 본 우리는
“치워주고 갈까?”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치우며 슬퍼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는
나에게서 너를 구하려고 멀어질 때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하는 일은
비처럼 그친다지
“빗소리 들려?”
멈추지 못하는 호흡들, 헉, 헉, 발밑의 집들이 보인다
지붕, 지붕, 지붕, 없는 것들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초록을 흠향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상장나무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제주에서는 사람이 죽어 시체가 부패하면서 내는 냄새를 막기 위해 사체 위에 상산나무 잎을 . 고라
얼기설기 맞추기니
시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편하게 살면 될 것을 자발적 불안의 거리로 나온다. 시체가 즐비한 물에 잠긴 세상에서 고약한 냄새를 치워버리고 여린 생명을 거두고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을 만들려는 의지를 보인다. 약으로 쓰인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것 같은 느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더러운 세상을 정화시켜 달라는 흠향을 신께나마 빌며.
송장나무는 상장나무다. 잎에서 나는 독특한 향으로 시체의 냄새를 덮었다고 해서 송장나무라고 하는.
신이 여기에 오지 못하는데 대한 미안함으로 송장나무를 보낸 것 같다. 치워버릴 수 없으니 꾸린내를 덮기라도 하라는 속 깊은 배려아닐까.
같은 동물도 향이 강해 상산나무 아래서는 쉬지 않는다고 한다.
강해 상산나무 아래서는 쉬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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