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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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8회 작성일 22-09-11 13:54본문
유체
=황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처에서 젖은 풀이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게 너무 생생해서 실감이 나질 않았다 여중생들이 비를 맞고 신났다 이 또한 실감 나지 않았다 달리는 차들과 그것들이 튀기는 물과 깜빡이는 불빛의 긴 꼬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에 두고 온 것이 있었다 거기엔 물이 이미 차 있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절이 흘렀다 비가 계속 내렸다 비를 실감할 수 없었다 물에 비친 검은 머리카락 영혼들이 내게 손짓했다 계절감이란 말이 좋았다 계절이란 말보다 몸이 자주 부었다
鵲巢感想文
여기서 비는 하나의 생명을 약동하고 키우는 장치다.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 악이다. 비가 내리고 있는 작용은 유체를 확인한다. 하나의 몸뚱어리가 있으므로 해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도처에 풀이 생기를 자라거나 여중생들이 비를 맞고 신이 나 있거나 달리는 차들에서 물이 튀기는 것과 불빛의 긴 꼬리가 느껴지는 일과 같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것을 못 느끼고 있음을 말한다. 마치 지하에 돌아가고 싶거나 거기에 뭔가 놓아두고 온 것처럼 정신은 없다. 다만, 계절이 바뀌었고 그렇게 흘렀고 비만 내렸다. 비만 내렸는데 실감할 수 없는 존재의 불확실성에 끊어진 내 영혼만이 철둑길처럼 가고 있고 기차처럼 마디를 잇고 있음을 다만 느낀다.
시제 유체는 시체의 또 다른 말이다. 실체를 느끼는 일은 모든 것을 대해 보고 겪어 보는 일이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는 차에서 튀기는 물이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 그 존재의 느낌은 마치 속도처럼 언뜻 스치는 느낌으로 닿는다. 인생이 그렇다는 얘기다. 달리는 차처럼 순간적이다. 이런 와중에 유체를 확인할 조차 없는 존재의 불인식은 계절감처럼 닿는다. 그것은 마치 부러진 것에 대한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고 시인의 할 일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 말하자면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검은 머리카락의 영혼처럼 그 유전자를 확인할 조차 없는 현대인의 문명적인 삶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실감할 수 없는 비만 내리고 물에 비친 불빛처럼 긴 꼬리 혜성으로 가는 세월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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