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치면 탁탁 부스러지는 돌멩이. 거품보다 단단한 돌멩이. 잠시 잠깐 그 형상을 유지하는 돌멩이. 돌멩이의 얼굴과 생각은 여기서 잠깐 굳는다. 우리는 그 순간만을 본다. 본다고 말한다. 툭툭 치면 탁탁 옮아가는 돌멩이의 하루는 여기서도 보이고 저기서도 멈춘다.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대신 태어나는 돌멩이의 생각과 하루를 또 이렇게 번역한다. 푸딩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공기처럼 그것은 단 한순간도 돌멩이가 아니다. 아니라고 말 못한다. 스스로 변해가는 날씨. 스스로 조종하는 우리의 날씨. 돌은 돌 이상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돌이 되었다가 살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사람으로 옮아오는 이 이상한 포즈를 우리는 스스럼없이 돌이라고 부른다. 조각상이라고 부른다. 움직이지 않는.
얼띤感想文
시제 돌의 생각에서 돌은 무슨 생각을 할까마는 돌을 들여다보는 그 반대쪽의 얼룩을 돌의 생각으로 치부하는 것이겠다. 돌은 그대로지만 돌을 읽는 마음 쪽의 묘사다. 그것은 툭툭 치면 탁탁 부스러지는 돌멩이 그러니까 툭툭과 탁탁은 와전처럼 다가온다. 거품보다 단단한 돌멩이, 거품이 단단할 수 있겠는가마는 물방울의 오해 그 속에서 꺾을 수 없는 문자화는 그 어떤 돌멩이와도 같다. 그러나 그것을 본 표상은 잠시 잠깐의 돌멩이로 유지한 것이 되며 굳음의 세계관을 이루었다. 어쩌면 돌멩이는 그 순간을 포착하며 그러한 고대에서 오는 기대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시인은 최면을 거는 거라 했고 멈춤의 작용이자 조각상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본 우리는 푸딩처럼 바닥에 떨어진 날씨며 그러니까 날씨처럼 변덕에 가까운 이물이라는 뜻이며 돌은 돌 이상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돌에 귀의하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작용의 기계적 언어만 고대할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옮아오는 이상한 포즈처럼 닿을 것이며 푸딩처럼 쫄깃한 푸딩처럼 잡다한 푸딩처럼 디저트적인 하루를 열 것이지만 결국 돌에 지나지 않음을 그 순간만 즐길 뿐이라는 사실, 그렇다. 돌멩이의 전부는 돌멩이라는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이상한 포즈에 스스럼없는 돌의 생각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