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호텔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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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6회 작성일 22-09-13 16:19본문
냉장고 호텔
=김혜순
냉장고가 잘 안고 있겠지. 냉장고의 어깨는 크니까. 그러다 냉장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냉장고를 방문했다. 냉장고를 열자 냉장고가 1년간 참은 숨을 내쉬었다. 몸을 버려두고 홀로 떠난 엄마가 거기 있었다. 엄마의 얼어붙은 숨. 벌어진 턱뼈. 엄마는 먹기 좋게 나누어져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깨끗이 결빙한 두 발. 웅크린 핏물. 수은처럼 맺힌 눈물. 엄마는 정말 많았다. 처음 것을 꺼내면서 유리창이 덜덜 떨기 시작했는데, 유리창이 다 깨지도록 엄마가 계속 나왔다. 엄마의 결심처럼 굳은 것. 불안을 냉동한 다음 기절한 것들이 말했다.
자 얼른 옷 벗고 들어오세요.
같이 누워요
걸칠 옷도 없는 몸뚱이만 있는 것들의 저 마음먹음.
나는 냉동된 엄마를 꺼내어 대패로 갈았다.
(절벽에 매달린 호텔이 방문을 열어젖히듯 문을 열자 1인분씩 나누어진 고기들이 방마다 쌓여 있었다. 어느 봉지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오면 먹이려고 한 것 같았다. 어깨를 구부리고 고기를 써는 엄마의 등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생을 끝낸 고기들은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위엄이 있었다. 몸뚱이만 있는 것들은 눈꺼풀이 없었다.)
나에게서 플러그를 빼자
생고기로 만든 호텔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鵲巢感想文
냉장고는 냉장고가 아니고 호텔은 호텔이 아니었다. 냉장고는 마치 시집처럼 시집에서 더 나가 시인의 모습을 그려낸 제유적 표현인 거 같다. 이 시를 읽는 이는 몸뚱이로 다가오지만, 나를 일깨우는 일은 역시 엄마의 역할, 그 엄마를 어떻게 분해하느냐에 따라 시 인식의 기준은 또 달라지겠다.
절벽에 매달린 호텔, 호텔은 마치 좋은 얘기처럼 들리는 문장이다. 好-tell의 표현은 가히 압도적이다. 문을 여는 행위와 1인분씩 나누어진 고기들이 방마다 쌓여 있는 길, 마치 내가 그것을 읽으라는 미래 지향적이며 암시적인 글로 닿는다.
어깨를 구부리고 고기를 써는 엄마의 등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마치 엄마가 고기를 써는 것처럼 닿지만 실은 내가 이 시를 읽고 있는 과정이므로 시 인식의 과정을 거치는 행위겠다. 생을 끝낸 고기들은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위엄이 있었다. 시의 결론적 과정은 죽음이므로 바짝 마른 어떤 포 한 장을 들여다보듯 위엄성은 있겠다.
나에게서 플러그를 빼자, 생고기로 만든 호텔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고기는 붉다. 푸름의 지향하는 가운데 붉은 것은 역시 시와는 대조적으로 닿는다. 시의 세계에 접근성으로 보자면 아직 멀었다. 그 호텔이 무너진다는 표현, 무엇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앞뒤 질문과 연결성 그리고 고리가 맞아야 하지만, 붉은 것에서 푸른 것으로 가는 길 가운데 어떤 연결을 찾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시가 그렇다는 얘기다.
22년 9월 13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잠깐 일 보고, 촌에 다녀왔다. 어머님께 밥상 차려 드렸다. 가지나물을 무쳤고 생선을 구워드렸다. 두부도 찢어 올렸다. 함께 밥을 먹었다. 몸이 다 되었는지 움직이는 게 여간 힘이 들어 보인다. 화장실 다녀오는 일도 어려웠던지 화장실 변기 물통이 부서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사용할 수 있지만,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수리해야겠다.
오후, 영대 편의점 건물주를 만났다. 견적서를 제출했다. 건물주께서 여러 가지 하소연을 얘기한다. 건물도 세놓기 어렵고 세를 놓아도 세금이 만만치 않다는 게 주 요지였다. 사대보험과 소방 관련 그리고 부가세 등 고려할 사항을 듣고 있으면 국가에 받치는 세금은 무려 50%나 된다는 사실, 거기에다가 건물 관리비까지 고려한다면 뭐가 남겠냐는 것이다. 참,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러자니, 일은 안 할 수 없고 일하자니 세금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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