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서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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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22-09-15 20:21본문
겹쳐서
=이병률
양말에 구멍이 났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넘기려 했지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오래 있어야 하는 자리였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양말 구멍으로 내민 살이 꼭 그곳에 있기 싫은 내 얼굴 같았다 구멍이 나는 쪽은 항상 오른발이었다 신경쓰면서 살지 않았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집요하게 한쪽에서만 구멍이 생겼다 하긴 사람만 없으면 그것도 별일은 아니겠지만 밖으로 나가 새 양말을 사서 얼른 신었다 신었던 양말을 벗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위에다 신었다 속옷을 두 장 입는 사람도 있다 가면과 가면은 겹쳐진다 쓰고 있는 가면 위에 다른 가면을 겹쳐 쓸 수도 있다 만두피가 생겨 만두를 빚을 일이 생겼는데 안에다가 채울 것이 없어 냉동만두를 넣고 통째로 감쌌던 적 있다
鵲巢感想文
솔직한 시인을 본다. 고흐 그림은 분간이 간다. 이중섭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글도 어느 시인의 것인지 분간이 가는 것도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풍만한 양을 자랑하는 시대, 마치 바다에 이종의 어류들이 분화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분간하지도 않는 문학과 비평의 시대 겹치는 일은 다반사다. 양말에 구멍이 난 것과 모 시인의 할아버지 얼굴에 구멍 난 것과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그러나 신경 쓸 필요 없고 신경 쓰면서 살 필요도 없다.
냉동만두는 그 자체가 완벽한 상품이다. 그 위에 덧방 할 필요 없는 먹을만한 식품인데 우리는 거기에다가 한 겹 더 씌운 피를 어쩌면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치장의 시대며 장화의 가면만이 인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없는 얘기를 쥐어짜야 하며 기어코 양말에 구멍이 나는 여기에 날개들은 모이 찾기에만 급급하므로 또 그에 맞는 쭉정이가 생산되고 허공은 공기로 풍만한 냉동만두들 그렇다, 어차피 가면이다. 진솔한 삶의 얘기가 아니라 유희적 산물의 시대, 슬픔이 없는 시 오늘을 겹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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