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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달의 혈족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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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2-09-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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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혈족

=강정

 

 

    자꾸 누가 따라와서 그랬을 거예요 몸이 뒤집혀 말을 하려 하면 말의 입자가 토각토각 동강 나 이빨만 부르르 떨었어요 돌아보면 소금기둥 아니라 내 몸이 벽이 되고 그걸 뚫고 갈 수 없어 그대로 관이 되어 누가 밟고 지나갈 길이 몸 안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걷고 있어도 내가 걷는 게 아니고, 보고 있어도 내가 보는 게 아니었어요 큰 개가 한 마리 휙 지나간다고 느꼈어요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고 내 그림자가 달빛을 먹으며 크게 자라고 있었어요 걸음을 빨리 했죠 무슨 고기 썩는 냄새 같은 게 풍겼어요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말소리 같은 것도 들렸지요 또 돌아보니 바람 지나 쓰러진 나무가 있고 흰 달이 해죽해죽 웃고 있어요 겨드랑이와 목덜미에서부터 털이 자라났어요 무슨 큰 죄를 지은 게 있어 쫓아오는 달빛을 무서워할까, 쫓기면서도 복부에 아련하게 맺히는 이 따뜻한 기쁨은 무엇일까, 갑자기 이가 가렵고 손톱으로 제살을 찢어 쓸모없어진 근육들을 지나가는 개에게 먹이고 싶어졌죠 눈앞에 불 켜진 교회가 있고, 나무들이 기립한 숲이 나타났어요 나는 다만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세상에 내가 돌아갈 집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었을까 의아해졌어요 어둠의 속도만큼 허기가 더해지고 허기가 깊을수록 무성해지는 털이 허기를 가리는 방패거나 색욕을 북돋는 가시 같았죠 몸 안의 추위가 싸르락싸르락 길을 쓸고 지나 사위가 온통 시커먼 얼음의 동굴로 변했어요 문득, 한 사람의 그림자가 먼 데서부터 커지더니 이내 숲이 되고 벽이 되고 달의 큰 문으로 이어진 검은 무지개다리가 되었어요 그 위를 네발로 기어올랐어요 기어오를수록 몸이 갈가리 찢기며 발 아래로 피가 뚝뚝 듣고 있었어요 아랠 내려다봤죠 시커멓게 응혈진 목소리들이 이빨 갈며 웅덩이로 번지고 있었어요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내가 지난 길들이 나를 삼키려 들까, 나는 오로지 달만 보며 기었어요 달빛이 베어 낸 그림자는 연신 아래로 떨어져 이 세상엔 없는 말들로 핏물을 흘리고 그림자에서 달아난 몸이 끝끝내 달의 둔부를 깨물려 하늘의 계단을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아올렸죠 다가갈수록 털 무성해진 몸은 지상으로 추락해 첫피를 맛본 여자의 개가 되거나 왕이 될 거예요 그날 이후, 사각사각 갉힌 달이 주기 없이 모양을 바꾸며 앓는 소리인지 교합의 탄성인지 모를 파동으로 피를 흘리면 자꾸 뒤돌아보게 돼요 내가 돌아가 몸을 뉘었던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사람인지 늑대인지, 몸을 뒤덮었던 털들이 달의 분화구 속에서 만난 거대한 숲의 일부인지, 거기서 떨어져 나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음부를 감싸고 스스로 집이 된 짐승의 허물인지에 대해서도

 

    얼띤感想文

    인자=崇烏

    나가지 않았다 가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저 문을 당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골방에 누웠다 누워 있었다 피곤하다고 생각하니 피곤했고 고단하다고 생각하니 고독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고 무기력한 하루의 시작인 건지 알 수 없는 시간 왜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건지 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자는 오로지 설원의 밭처럼 놓여 있었다 언젠가 붉은 피의 이동으로 함께, 마른 눈밭으로 옮겨야 할 책임을 부여받을 수 있는 그날을 뼈저리게 기다리고 있었다 구석진 골방에 머물면서도 창밖으로 여린 순록들이 뛰어가는 것을 본다 그들은 바닥에 오른 이끼를 용하게 파헤쳐 먹는다 내가 바라볼 수 없는 세계에서 저 결빙된 포막의 아래에 얼음 꽃으로 다만, 죄를 씻을 뿐이다 그렇게 나가지 않았다 가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저 문을 당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콧방귀 뀌며 후벼 파는 족속이 파헤칠 때까지 고스란히 얼어 있는 생명력으로 자생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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