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사가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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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2-09-16 21:47본문
종로사가
=황인찬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얼띤感想文
농로를 걷다가=崇烏
오늘도 농로를 걸었어요 말하자면 운동이었지요 초저녁 어머님 모시고 와 저녁을 해드렸어요 출출하셨는지 야야 우리 국수 삶아 먹으면 안 될까! 네 어머니, 국수를 삶고 건지며 갖은양념과 나물에 비벼 올렸어요 한 그릇 뚝 드시고는 쉽니다 다시 농로를 걷다가 뛰어봅니다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 지나 포도밭도 지납니다 황금들녘도 보고 오로지 뛰어봅니다 이건 일기며 운동이지만, 농로는 모릅니다 농로의 세계는 오로지 자연의 왜곡된 양식의 세계, 가을의 들녘은 보고 있다는 거 한 손이 지나가고 뚝 꺾는 내 열매의 꼭지가 끊겨나가는 한 손을 봅니다 그는 매일 이 거리를 지나갑니다 지나가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참 뒤, 다시 돌아와 다시 만져보는 줄기에 간혹 따가져 가는 손, 그렇게 매번 봉사하며 줄곧 서 있는 사과나무들 마치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농로에 있습니다만, 주인장은 어련히 따가져도 되느니 양 두고만 봅니다 가끔 일찍 나와 걸으면 출현하는 뱀들도 보아요 차에 치여 죽은 뱀의 껍질을 밟으며 걷다가 뛰기도 하면서 그러다 보면 정말 뱀의 출현에 가끔 놀라 자빠집니다 아이고머니 나, 그럴 땐 좀 더 일찍 나와 뛰어야겠다는 생각할 때도 있어요 밤길에 혹 모르잖아요 저걸 밟다가 아니, 밟고 간 적도 있을 거예요, 한날은 물컹거리며 발아래 느낌은 있었지만, 딴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걷다가 뛰어보면 맑은 대추가 노을빛 가득 물어 가는 얼굴도 봅니다 슬쩍 하나 따 입에 넣습니다 덜 익은 대추 한 알에 뱉어낸 적도 있지만 대체로 달고 맛있어요 그것뿐일까요 족제비는 자주 보는 야생 동물이고 빼꼼히 고개 들다가 쏙 들어가는 농로 밑 수로에 숨어 버립니다 어느 민가 개 짖는 소리와 불빛 찬란한 자동차도 간혹 한두 대씩 지나가거나, 달의 모양에 따라 어둡거나 밝거나 한두 명씩 지나가거나 신경 쓸 거 없이 오로지 내주어진 시간 알차게 뛰며 돌아옵니다
시제 종로사가가 참 좋다. 실지 있는 거리지만, 시적 세계관에서는 아이라든가 발꿈치라든가 따르거나 마치거나 그 어떤 것으로도 가능한 길路에 죽음의 거리가 되지 않을까! 사가死街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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