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오후 =김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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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오후
=김명리
까마귀 울음소리 낮게 들린다 구름 그림자 머뭇거린다 차례상 물리고 탕국에 말아 한 수저 뜨고 제기들 씻어 엎어놓고 나니 저녁 빛이 시간의 그을음처럼 내려앉는다 기억의 총량이 봉숭아 꽃씨만큼이나 작아진 아픈 엄마 등지고 앉아 속닥속닥 큰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전화 받는데 도대체 누가 죽었다는 게냐? 큰어머니가 누구냐? 가을 뜨락의 꽃빛 찬연하기만 한데 여기저기서 죽음의 총포가 울린다 산골짜기 집 기우뚱한 굴뚝 위로 기억의 불티처럼 갈까마귀 떼 날아오르는 추석 명절 오후다
얼띤感想文
추석은 명절 중 명절이다. 그러나 여기서 명절은 명절命絕로 읽힌다. 죽음이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맥의 증상, 그것은 허공의 손짓과도 같은 새떼의 울음과 날갯짓(우羽)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나를 낳으신 어머니의 증상은 심상치 않다. 기억의 총량이 봉숭아 꽃씨만큼이나 작아진, 그러니까 치매다. 이날, 큰어머니가 먼저 갔다. 그러나 부고를 듣는 이 와중에도 어머니는 누가 누군지 모른다. 가을 뜨락에 핀 꽃빛만 저리 붉다. 죽음에 가까워 온 엄마와 속닥속닥 소통할 수 없는 아픔까지 그 죽음의 총포가 공포처럼 와닿는 추석명절 오후, 아! 갈까마귀는 왜 또 저리 나는가,
일기 같은 시가 참 좋다. 훗날 읽어도 시인은 생각할 겨를을 남겼다. 기억의 총량을 한 장 더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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