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겹 =박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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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8회 작성일 22-09-23 12:38본문
흰겹
=박세미
일기장엔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의 일기가 적혀 있는데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에 그 아이는 내내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쩌면 운 것도 같았는데 왜 일기장엔 ‘그 아이는 울지 않았다’고 쓰여 있을까 무엇을 커닝한 것은 아닐까 젯소*를 페이지 전체에 바른다 인도 슬럼가 골목에서 아이들의 눈을 본 적 있다 젖은 구술 같았고 깔깔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르던 커다란 눈이 왜 스케치북엔 검정 색연필만으로 그려져 있나 젯소를 덧칠한다 하얗게 굳어가는 표면 앞에 망설이는 손이 있다 흰 겹들을 쓰다듬으면 느낌에 대한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 나는 또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동네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도 사라졌다’고 적었다 할머니와 막걸리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 순서도 모르면서 적었다 새 일기장 말고 젯소를 사기 위해 문방구에 간다
*젯소 밑바탕에 덧칠하여 흰 바탕을 만드는 재료
鵲巢感想文
밤새 주무시다가 일어나 보니, 세상이 하얗다고 했다. 정신 줄이 붙은 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신다고 했다. 아침 일찍 어머니 뵈러 갔다. 어디 좀 다니면 나을까도 모르겠다고 하시어 종일 함께 다녔다. 옥곡에 반찬가게도 다녀오고, 시지 모 카페에 커피 배송도 다녔다. 그릇 가게에 가 볼 일도 보았다. 점심을 챙겨드렸다. 갖은 나물에다가 흰밥을 넣고 비벼드렸다. 잘 드셨다. 좀 드시고 나면 나을 것이다. 뭐든지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지 않으면 젯소처럼 하얗게 덧칠한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인도 슬럼가 골목에서 아이들의 눈을 본 적 있다, 인도하다의 그 인도 그 슬럼가 골목에서 허덕이는 自我 아이의 눈은 젖은 구술이었다. 마른 구술로 가는 이행은 그렇다. 잘 먹어야 한다. 먹지 않으면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동네 가장 맛있는 막걸리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와 같은 현상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건 역시 영양 부족이다. 독서에 대한 영양도 영양이라서 내 일기를 바르게 잘 적기 위해선 문무 양반의 처세를 잘 이루어야겠다. 무릎이 온전해야 하며 가는 길, 뜻함이 있어야겠다. 색연필처럼 다양한 경험을 이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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