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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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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들 - 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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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22-09-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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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들 / 강은교


'왜 나는 조그마한 일로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대신
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작으냐 작으냐, 라고



<벽 속의 편지, 창작과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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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同대학원 졸업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 [순례자의 잠] 당선으로 등단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제18회 정지용문학상(2006) 수상
시집으로, 『빈자 일기』 『소리집』『붉은 강 』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노래』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초록 거미의 사랑』등
저서로, <초록 거미의 사랑>, <강은교의 시세계>, <차마 소중한 사람아> 등


<감상 & 생각>

이 시는 시인이 金洙暎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패러디Parody 한 작품으로 보인다.

소시민적 이해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반성하는 김수영의 시적 태도를
오히려 역설적으로 원용援用하면서, 그녀의 시를 전개하고 있는데...

자, 그럼 우선 이 시의 대상이 된 김수영의 시를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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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이 시는 金洙暎 시인이 모처럼 古宮에 갔다가 나오면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생각해보고, 자신의 삶과 시를 쓰는 행위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되돌아보고 비판하는 내용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5 ~ 60년대)당시의 암담한 현실은 하나의 거대한 벽이었으리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시인이 왜소화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그것을 넘어서 이상향理想鄕을 구축하려는 시인의 갈등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詩인데, 특히 외부 세계를 비판함에 있어 그것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迂廻的으로 못난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것에
이 시의 방향성方向性이 있다.

부조리의 현실에 맞서지 못하는 비겁성卑怯性과 일상의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옹졸함을 지닌 보잘 것 없는 시인 자신에 대해 극렬히 반성하고 있는데,
즉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에 대한 통렬痛烈한 <자기 반성의 시>라 할까.

물론, 강은교 시인의 시에서도 김수영 시인의 소시민적小市民的 반성을
무조건 탓하는 걸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표적으로 삼은 건...
김수영이 추구한 '거대한 뿌리'라는 시민적 이데올로기의
<추상성抽象性>인 듯 싶다.

즉, 그러한 거대한 운동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박탈되고 소외되는
작은 존재들의 <존엄성尊嚴性>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찮은 것들로 부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詩의 면모가 돋보이는데.

시적 패러디Parody 의 原목적인 원작 또한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리하여,
두 편의 시가 동시에 새로운 의미의 부여로 나란히 빛을 발하게 하는
시적인 묘妙가 있다.

새삼 시인의 깊은 역량이 느껴지는 그런 시 한 편이란 느낌, 떨군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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