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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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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표 위로 =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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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6회 작성일 22-09-26 20:43

본문

그 시간표 위로

=최정례

 

 

    그 집에 살 때, 장롱 문 안쪽 거울 옆에 전철 시간표를 붙여두었다. 그 시간표에 눈을 주고 적어도 몇 분에 집을 뛰쳐나가야 그것을 잡아탈 수 있는지, 연신 시계를 보며 옷을 입고 로션을 발랐다. 전철은 십오 분 간격으로, 주말에는 그보다 드물게 왔다가 갔다. 그 집을 떠나 몇 번을 이사했는지 셀 수도 없다. 장롱 문 안쪽에 손바닥 반만 한 시간표를 그대로 붙여둔 채 이사를 다녔다. 장롱은 조금씩 부서지고, 부서져서 어느 집으로 이사할 때 내다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밖에서 누가 경적을 울렸는데 문득 그 시간표가 떠올랐다. 코트 안주머니 깊숙이 뭔가를 넣어두었다가 몇 계절이 지나도록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처럼,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 말을 하리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라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녹음이 짙어지는 곳이 나타난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그래 여기서 내리자 여기서 내려 살아가자. 그랬던 어떤 순간이 있었다. 그때처럼 갑자기 어떤 결심이 서는 순간, 그때에 하리라.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어떤 순간이 올지 어떨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꼭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그 시간표 위로 지나간 전철들을 도저히 다 셀 수는 없다. 이제 와서 그것들, 그 말들, 그런데 어느 날은 그 이야기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죽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난 왜 이러는 것일까,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들을 생각도 없는데.

 

   얼띤感想文

    시와 소설의 차이는 진실과 허구가 아닐까 그러나 현대문학의 시는 어디까지 허구적 사실일까 논할 여지도 없겠다. 소설보다 압축적이고 경제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단 편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

    이 시에서 주요한 시어 하나가 등장한다. 장롱, 장롱은 일반적으로 옷 넣는 옷장을 말하지만, 물론 시에서도 이사한다는 내용이 많아 그렇게 읽어도 읽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장롱은 장롱長弄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긴 시적인 대화에서 오는 인식의 요구나 희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렇지만 시 결말에 보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들을 생각도 없다. 난 왜 이러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시는 써야 하는 시인의 직무를 볼 수 있다.

    장롱과 더불어 오는 시어, 거울과 전철 시간표, 옷을 입고 로션을 바르는 행위 전철은 십오 분 간격으로 오지만 주말은 드물게 올 수도 있다. 장롱을 바라보는 시적 주체는 전철 시간표처럼 눌어붙어 있다. 장롱은 몇 번 이사하다가 어디서 어떻게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필요가 없다. 집 안은 여러 장롱이 있으므로 문제는 그 장롱을 읽고 아침에 누가 경적을 울리듯 내 머릿속 번쩍 뜨게 하는 어떤 아드레날린 같은 게 있느냐는 것이다. 그 시간표가 시적 주체다.

    옷을 입고 로션을 바르는 행위는 하나의 치장이다. 아드레날린 같은 그 시간표에 닿기 위한 최소한 독자 그러니까 시인의 행동이겠다. 전철은 십오 분 간격으로 오고 주말은 드물게 올 수도 있다는 말도 재밌다. 전철 같은 긴 문장의 인식은 전철 같은 시를 읽거나 쓰거나 딱 그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시 좋아하는 사람은 대충 그 정도면 충분할 거 같다. 주말은 쉬어야 하고 여러 일도 있으니 드물게 올 수도 있겠다. 사실, 전철이 그렇게 오고 주말은 또 그렇게 가고 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어, 십오라는 숫자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생각을 가질 필요도 있겠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녹음이 짙어지는 곳이 나타난다. 시내 시의 안쪽이다. 버스의 느낌은 복합적이고 여러 낱말 같은 문장에서 한참을 달리다 보면 녹음이 짙은 곳에 오기도 한다. 그것은 나를 알아보는 자, 인식이겠지만 그 순간 시는 죽어버린다. 집에 들어가는 꼴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런 순간이 또 얼마나 자주 있을까, 이러한 일은 시의 독자도 마찬가지만, 역으로 시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어서 시 쓰는 어떤 교감으로 닿기도 한다.

    그 시간표 위로 한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글 쓰는 이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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